안의면

함양의 전설

고정부락의 구두쇠 [인색한 부자의 최후]

안의면 월림리 고정마을과 국도 사이의 논들을 보면 옛날에 물이 흘러간 하천이었음을 누구든지 금방 알 수 있는 곳이다.
농월정 앞을 구비쳐 흐르는 맑은 물결이 옛날에는 이곳으로 춤을 추며 흘러갔다고 하며 그 당시에는 하천 정비나 관개시설이 잘 되어 있지 않아 큰 비만 오면 많은 피해를 입었다.
수해로 인해 들이 하천으로 변하고 물길이 엉뚱한 곳으로 흐르곤 하였다.
그리고 가물면 물이 없어 농사도 짓기 어려웠다.

이곳 고정마을도 옛날에는 지금 흐르고 있는 냇물바닥은 논과 밭들이고 그 사이에 욕심많고 인색한 부자가 하나 살고 있었다.
고래등같은 큰 기와집을 짓고 떵떵 울리며 살았다고 한다.
어찌나 구두쇠이고 인색한지 자린고비나 놀부 이상으로 남을 동정할 줄 모르고 집안 식구들의 먹는 것조차 벌벌 떠는 욕심장이라고 하였다.

주인뿐 아니라 모든 식구들이 그 구두쇠에게서 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똑 같이 인색하고 서로 질세라 욕심을 부렸다.
이러한 가족들에 끼인 며느리 하나만은 마음이 착하고 동정심이 깊었다.
찾아온 거지들에게 식구들 몰래 밥 한 술이라도 주며 탁발승에게 쌀 한 줌이라도 주어 사람 구실을 하였다.
까마뀌떼 사이에 백로가 끼어 있는 것처럼, 진흙탕에 옥이 반짝이는 것처럼 며느리는 더욱 착해보였다.

몇 번인가 탁발승의 목탁 소리에 화를 낸 주인은 속된 말로 동냥은 못줄망정 쪽박을 깨어버린 일도 있다 참으로 가증한 족속들이었다.
누구라도 그집에 들렀다 나오는 사람이면 그를 저주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부자라도 그런 생활로 어찌 복을 받을 수 있겠는가.

그러던 어느날 탁발승이 문전에 나타나서 목탁을 두드리며 시주를 청하였다.
마침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던 며느리가 목탁소리를 듣고 보리쌀 한 주발을 시주하기 위해서 대문간에 나가 공손히 합장하고 자루에 보리쌀을 부어주었다.
그 때 주인이 나타나서 이 광경을 보고 노한 얼굴로 언성을 높이며 이만저만 책망하는 것이 아니다.
중을 욕하고 며느리에게 고함을 치는 등 호통을 쳤다.
중과 입싸움을 시작한 시비가 드디어 주먹질로 탁발승을 쫓아버렸다.

“이 땡땡이 중놈아 너에게 줄 곡식이 어디 있느냐? 네가 왜 우리집에 오느냐? 너같은 놈은 다시는 우리집에 발도 대지 말라.”

“이 고약한 영감아, 네가 평생 잘 살줄 아느냐?”

“네놈과는 말도 하기 싫으니 빨리 꺼져라.”

며느리는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 탁발승에게 미안한 마음 금할 수가 없으며 송구스러워 했다. 오히려 시주를 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도 해 보았다. 이러한 며느리에게 중이 떠나면서 말을 전했다.

“아무리 해도 이 집은 욕심이 지나쳐서 화를 면할 길이 없어요. 동물적인 사람에게는 인간대접을 할 수 없는 것이오. 그러나 부인과 같이 착한 사람까지 한 가족이라고 해서 화를 입혀서야 되겠어요? 이달 그믐날은 비가 많이 쏟아질 것이니 그 때 부인은 이 집을 피하시오. 내 말을 꼭 명심하시오.”

“스님 용서하시오. 저의 불찰로 그렇게 되었으니 저에게 책망하시오.”

“여러말 할 것 없어오. 내말을 명심하시오.”

하고 어디론가 표연히 사라져 갔다.

이 말을 들은 부인은 마음이 괴로웠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인색한 주인은 아무것도 모른채 탁발승이 다음에 또 오기만 하면 그때는 단단히 혼을 내 주겠다고 벼르고 있을 뿐이었다. 동냥을 안주면 그만이지 이제는 쪽박을 깨고 행패까지 부리려고 벼르고 있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는동안 부인도 이일에 대해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날 그날의 바쁜 일과에 쫓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덧 부인도 모르게 탁발승이 말한 그믐날이 밝아왔다.
인색한 구두쇠 부자에게 징벌을 가할 날이 다가온 것이다.
날이 밝자마자 며느리는 친정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인편의 전갈을 받았다.
하늘이 도와준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집을 떠나 친정으로 갔더니 어머니 병환의 위기는 면한 상태였고 집안 식구들이 모여앉아 숨을 돌리고 있는 중이었다.
며느리 본인도 모르고 있었으나 징벌에서 구원하기 위해 그를 피하게 한 것이다.

아침부터 시작한 비가 점점 장대비로 변하여 점심때가 되자 비가 아니라 하늘에서 물이 쏟아지듯 호우가 쏟아내렸다.
삽시간에 냇물이 불어나 위에서 떠내려오는 돌과 흙더미, 그리고 잡목들이 하천의 한 복판에 걸렸다. 노도와 같은 물결이 산기슭의 가장자리와 논두렁을 차고 부자집을 송두리째 뿌리 뽑았다. 낮은 곳으로 흐르면서 새로운 냇물을 만들어버렸다.

홍수로 말미암아 완전히 물길이 변하고 구두쇠 부자의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조금 전까지도 고래등같은 부자집이 일순간에 없어지고 논들은 냇물로 변하고 말았다. 문자 그대로 천지개벽이다. 메마른 인간에게 대한 징벌이었다.

기별을 듣고 달려온 며느리는 집터조차 알아 볼 수 없게 된 냇물만 바라보면서 탁발승의 하던 말을 회상하였다.

'아무래도 이 집은 화를 면할 수 없소 착한 부인까지 화를 입혀서야 되겠어요? 이달 그믐날 큰 비가 올것이니 이 집을 피하시오.' 하던 그말과 중의 모습만 눈 앞에 아롱거릴 분이다.

아무리 구두쇠리 할지라도 징벌이 너무 심한게 아닌가!
도덕적으로 바르지 못하다 할지라도 큰 죄를 범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죽은 시부모와 남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욕심장이라 할지라도 부모요, 남편이다. 차라리 같이 죽었더라면 더 낫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났다.
가족들을 죽이고 어찌 혼자 남아 살겠다고 하겠는가. 홀로 살아남은 것이 가슴 아픈 일로 견딜 수가 없었다. 너무나 괴로웠다.

그녀는 머리를 깎고 절로 들어가 중이 되었다.
죽은 식구들의 명복을 빌며 한 평생을 마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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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문화관광과 문화예술담당 (☎ 055-960-4510)
최종수정일
2023.08.10 14: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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