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게시물 검색 10개 20개 30개 50개 제목 검색 총 48건의 게시물이 있습니다. (1/5 페이지) 하승현 (河升鉉) : 미상 우리민족에 대한 일본의 강압과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이어 1910년 8월 22일 '경술국치'라고 하는 한일합방의 치욕적인 사태가 발생되자 수많은 열사, 의사, 지사등이 자신과 가족을 돌보지 않은채 민족의 제단에 목숨을 바쳤다. 1919년 1월 고종황제가 돌연 승하하자 항간의 민심은 일본을 의심하였고 국장일이 3. 3일로 정하여지자, 국장일 이전에 민족의 자주독립을 쟁취 하기 위하여 3. 1일을 기하여 파고다공원에서 독립을... 2016-07-15 관리자 조회수 : 1104 하맹보 (河孟寶) : 1531~1593 공의 자는 대재(大哉), 호는 우계(愚溪)이고 본관은 진양이며 하활 의 아들로 병곡면 도천리에서 태어났는데 우계 선생이 살았다고 하여 지금도 도천마을을 우동(愚洞)이라고도 부른다. 어릴적부터 학문에 뜻을 두어 노진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으며 의리가 깊었고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 상중에 시묘하면서 죽만 먹었는데 때로는 제물이 없어서 걱정을 하니 산노루가 스스로 와서 제물이 되어주었다. 노진 선생이 말하기... 2016-07-15 관리자 조회수 : 948 표연말 (表沿沫) : 1449~1498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자는 소유(少游), 호는 남계(藍溪)이며 본관은 신창이고 표계 의 셋째 아들로 함양에서 태어났다. 공의 형제 3명이 모두 급제하여 맏형은 현감을 둘째형은 부사를 지냈다. 공은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문하로써 1471년(성종2) 식년문과 병과에 급제하여 봉교로 재직중 1478년 신임관리들로부터 주연을 대접 받았다 하여 파직되었다가 1482년 복직하여 공조좌랑이 되고 1486년 장례원 사의로서 문과 중... 2016-07-15 관리자 조회수 : 1080 조효동(趙孝仝) : 1420~1499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자는 효여(孝汝) 호는 남계(南溪) 본관은 함안이고 조승숙(趙承肅)선생의 증손으로 태어났다. 1438년 생진 양시(兩試)에 합격하여 음보(蔭補)로 밀양부사를 제수 받아 선정을 베풀어 군민들로부터 많은 칭송을 받았고, 1447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사예,장령,병조정랑,내섬시정,사섬시정,사간원 대사간을 고루 거쳤다. 사간으로 있을 때 곡식의 낭비를 막기 위해 소주 사용금지에 대한 소를 올렸으나 몰... 2016-07-15 관리자 조회수 : 1101 조종도 (趙宗道) : 1537~1597 호는 대소헌(大笑軒)이고 자는 백유(伯由), 시호는 충의공(忠毅公)이며 본관은 함안이다. 1537년(중종32년)에 태어나서 1597년(선조30)에 안의현 황석산성에서 현감 곽준과 함께 적탄에 맞아 장렬히 최후를 마친 순국의사이다. 공은 10세에 은거하는 군자 정두 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남명 조식 선생으로부터 다시학문을 배웠다. 1558년(명종13)에 나이 22세 되는해에 생원시에 급제하여 첫 벼슬로 안기도 찰방이 되었다.... 2016-07-15 관리자 조회수 : 1019 조광립 (趙光立) : 미상 1592년 임진왜란의 여파로, 1597년 왜구가 다시 금수 강산에 분탕질을 했는데 이것이 정유재란이다. 이때, 가족을 버리고 피난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조 광립·광헌·광덕·광건·광성 5형제는 노모를 모시고 함께 피난을 떠나고 있을 때 왜적을 만나 꼼짝없이 죽게 되었다. 이 긴박한 상황중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고 5형제가 노모를 둘러싸고 보호를 하면서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이에 왜적도 효성이 지극함을 통감하고 ... 2016-07-15 관리자 조회수 : 1033 정홍서 (鄭弘緖) : 1571~1648 조선 중기의 학자이신 선생의 자는 극승(克承), 호는 송탄(松灘)이며 현감을 지내 정대민의 아들로서 문헌공 정여창 선생의 현손이다. 한강 정구 의 문인으로서 33세때 일두 선생의 역사적 재평가에 따라 그 후손으로서의 음덕을 입어 현릉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모친상을 입어 사직하였다. 그 후 39세에 사마시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었고 능전 참봉을 세 번이나 지냈지만 재직기간은 짧았다. 1628년(인조6) 문과 ... 2016-07-15 관리자 조회수 : 1099 정여창 (鄭汝昌) : 1450~1504 조선조 5현의 한분이며 동국 18현중의 한분으로 성리학의 대가이신 선생의 자는 백욱, 호는 일두로서 시호는 문헌공(文獻公)이다. 판전농시사를 지낸 정복주의 손자이며 한성부좌윤 정육을의 아들로서 함양군 지곡면에서 출생하였고 본관은 하동이다. 성종 21년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지리산에서 4서5경과 성리학을 ... 2016-07-15 관리자 조회수 : 1437 정수민 (鄭秀民) : 1577~1658 조선 중기의 학자인 공의 자는 자빈(子貧), 호는 춘수당(春睡堂)이고 본관은 하동이며 정언남의 아들로 수동면 효리에서 태어났다. 조선 초기 대학자인 정여창 선생의 증손으로 그 부모는 모두 정유재란때 황석산성에서 순절하였다. 정구(鄭逑) 의 문하로 학덕과 품행이 증조부 정여창과 비슷하였으므로 소일두(小一履, 일두는 여창선생의 호) 라 불렸다 인조때 군자감 참봉으로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무오사화... 2016-07-15 관리자 조회수 : 1112 전백현 (全伯鉉) : 미상 경기도 사람으로 1908년 고종황제때 선전관 윤래경과 더불어 의병을 규합하여 지리산을 근거로 자신은 지휘관이 되고 윤래경은 참모가 되어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3월에 일본군이 산청의 대원사에 있는 것을 탐지하고 근처에 잠복하였다가 땅거미가 질 무렵 일제히 공격하여 크게 이겼다. 그 후 그의 활약은 일약 유명해졌으나 4월의 벽소령 전투에서 훈련이 부족한 병사와 성능이 좋지 못한 병기로 싸우다가 마... 2016-07-15 관리자 조회수 : 1032 « ‹ 1 2 3 4 5 › » 담당 문화체육과 문화유산담당 (☎ 055-960-4640) 최종수정일 2023.11.17 13:41:59 만족도 조사 현재 열람하신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십니까? 평가 매우 만족함(5점) 만족(4점) 보통(3점) 불만족(2점) 매우 불만족(1점) 의견 등록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