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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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소 :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길 2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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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내용

조선 인조15년(1637) 봄 병자호란이 일어나 남한산성이 함락되고 청 태종과 군신간의 삼전도 국치(國恥)가 일어나자, 깊은 산속에 은거코자 인조 17년(1639) 겨울, 화림재(花林齋) 전시서(全時敍)공은 거창 영승리를 떠나 이곳 새들 봉전에 이르러서 들을 개척하고 이듬해 봄 화림재(花林齋)란 서재를 지었는데, 마을에선 신평재(新坪齋)라고도 하였다. 헌종7년(1841)에는 경상, 전라, 충청, 강원 4도의 사림(士林)들이 화림재 전공의 7대조인 여말 충신 전법판서 채미현 휘 오륜(五倫)공을 제향(祭享)하자고 여러 차례 통문을 돌려 안의현 서쪽 20리 화림동에 서산사(西山祠)를 세웠다고 채미현실기에 전한다.

그러나 철종4년(1853) 봉전 돈 마을에 큰 화재가 일어나 서산사도 화염에 쌓이자, 한 서생(書生)이 죽음을 무릅쓰고 화림재 현판을 찾아 서원 뒤에 놓았는데, 현판은 그대로 남았으므로 천우신조(天佑神助)의 이적(異蹟)이라 하였다. 하지만 고종5년(1868) 서원철폐 조령(朝令)에 의해 서산서원은 사라지게 되었다. 이 현판은 거연정(居然亭)에 걸려 있다가 1995년 문중에서 중건한 화림재로 옮겨져 오늘에 이른다.

현판글씨는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의 문하에서 실학과 서예, 금석학을 공부하고 예서의 묵린에 이름을 떨친 형조판서 위당(威堂) 신헌(申櫶)공이 순조 때 썼다.

서하면 봉전마을이 정부로부터 선비문화마을로 지정이 되고, 이후 권역별 국가사업에 선정되면서 서산서원을 중건(重建)하였다.
고종의 서원철폐령으로 인멸된 서산서원이 병신년 경자일(2016년 3월 19일)에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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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문화관광과 문화재담당 (☎ 055-960-4540)
최종수정일
2023.09.25 14: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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