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하면 게시물 검색 제목 내용 검색 총 2 건의 글이 있습니다. (1/1 페이지) 은행정 마을의 은행목 [마을의 수호신이 된 은행나무] 서하면 소재지인 송계마을에서 남서쪽으로 골짜기를 쳐다보면 골짜기 중턱에 거대한 나무가 마을을 덮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서하면 운곡리 은행마을에 서 있는 은행나무다. 감나무를 비롯하여 많은 나무들이 이 마을을 덮고 있지만 유독 은행나무만이 군계일학(群鷄一鶴)으로 우뚝 솟아 울창하게 뻗어서 돋보이게 된다. 나무의 높이는 약 40m나 되고 둘레가 13m나 되는 거대한 은행나무로서 그 수령은 잘 알 수 없으나, 이 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오는 사람의 25대 후손이 이 마을에 살고 있다고 하니 약 700년 내지 800년의 수령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나무가 서 있는 마을의 이름도 이 나무로 말미암아 은행마을 또는 은행정이라고 불리게 된 것으로 보아 마을의 형성과 더불어 그 역사는 이루어지게 되었으리라는 것을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다. 풍수지리설에 ... 황석산성 피바위 [옥녀부인의 장렬한 죽음] 1592년의 임진왜란이 5년간이나 계속되는 동안 이 나라의 참상은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지경에 이르렀다. 화친교섭이 시작되었으나 서로의 명분을 주장하다가 회담이 결렬되고 왜적은 1597년(선조30년)정유년에 재차 침략을 단행했다. 남해안으로 상륙한 왜적은 곽재우 장군의 요새인 창녕 화왕산성을 돌아 초계와 합천을 거쳐 진격했다. 전주와 남원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올라오면서 황석산성으로 쳐 들어왔다. 당시 체찰사로 있던 이원익은 안의, 거창, 함양 등 3개읍의 백성들과 군사를 모아 황석산성을 지키도록 명령하였다. 그 당시 안음 현감으로 있던 곽준은 직접 관민을 동원하여 성을 수축하고 병기와 기재를 정비하여 싸움에 대비했다. 한편, 이 소식을 들은 전 함양군수 조종도가 가족을 이끌고 산성으로 들어와 곽준과 힘을 합쳐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을 결의하고 북상하는 ... « ‹ 1 › » 담당 문화관광과 문화예술담당 (☎ 055-960-4510) 최종수정일 2023.08.10 14:06:16 만족도 조사 현재 열람하신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십니까? 평가 매우 만족함(5점) 만족(4점) 보통(3점) 불만족(2점) 매우 불만족(1점) 의견 등록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