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천면 게시물 검색 제목 내용 검색 총 11 건의 글이 있습니다. (1/2 페이지) 강씨 문중의 애기장군 [졸렬한 지배자들의 희생물이 된 영웅들] 이 이야기는 마천면 강청리 강청부락의 강씨 문중에서 조선시대 초기에 있었던 일로 전해지고 있다. 얼마나 옛날의 사회가 맹점이 많았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다. 강씨 집안에 애기 장군이 태어나기 전이다. 애기장군의 할아버지가 마을 뒷산의 장군대좌라는 명당 자리에 자기 부친의 묘를 썼다. 그로부터 몇 년 뒤에 마을에서 들판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서 건넌편의 개울물을 끌어오려고 수로를 내게 되었다. 뒷산의 장군대좌 위쪽 약 삼백미터 지점의 산등성을 파고 산줄기를 잘랐다. 그랬더니 자른 산등성이에서 뜻밖에도 붉은 피가 솟아올랐다고 한다. 이것은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 것이 장군대좌의 장군목에 해당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장군의 목을 잘랐으니 거기서 피가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이 있고나서부터 세월은 흐르고 몇 ... 괴바우소(沼)와 산적들 [산적들을 깨우친 사냥꾼] 마천면 소재지에서 백무동을 향해 나가면 실덕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곳 마천초등학교에서 송알 삼거리에 괴바우라는 소(沼)가 있다. 한신계곡의 물이 백무동을 거치고 벽소령에서 삼정을 거쳐 내려오는 맑은 물은 강청에서 만나 이 괴바우소를 흘러오게 되어있다. 이 괴바우소가 있는 냇물을 따라 지금은 2차로 도로가 나서 아스팔트로 깔려 있지만 옛날에는 험한 골짜기였다. 도로에서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으로 내려가 보면 괴바우소 주변에는 넓은 반석이 50여평가량 깔려있어 관광철이면 때때로 외지의 관광객들이 이 너럭바위에서 놀다가 가기도 하는 곳이다. 괴바우소에는 이곳에 숨어 들어와 사는 판서의 딸 숙영과 지리산에서 사냥을 하는 사냥꾼 랑, 그리고 산적들에 관한 전설이 서려있다. 옛날에 조정에서 역적으로 몰려 죽음을 당해야 할 처지에 놓인 판서가 있었다. 죄가... 노첨지소(沼) [바람난 노인이 빠져죽은 소] 지리산 기슭, 여름이면 많은 등산객이 모여들고 있는 마천면 삼정리 양정마을 동쪽 계곡에 「노첨지소」라는 소가 있다. 옛날에 노첨지라는 노인이 이 부락에 살고 있었다. 7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20대 젊은이와도 같은 정욕이 타오르고 여자에 대한 소유욕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루는 벽소령에서 주막집을 경영하고 있는 주모를 유혹해 볼려고 주머니 속에는 술값으로 엽전을 두둑하게 넣고 벽소령으로 깐닥깐닥 올라가고 있었다. 이 벽소령의 주막은 산속에서 나무를 베어서 목기를 깍는 목기장이나 약초를 캐러 다니는 사람들, 그리고 벽소령을 넘어 하동장에 장보러 오가는 장꾼들을 상대로 술을 팔고 국밥을 팔았던 것이다. 노첨지는 이 벽소령 주막의 주모가 마음에 들었으나 그 여인이 마음을 허락하지 않아 번번히 실패를 하고 술만 마시고 돌아오곤했던 것이다. ‘내 이... 대왕재(待王在) [사냥간 왕을 기다리던 곳] 마천면 군자리 외마 마을에서 군자마을로 넘어가는 고갯길을 대왕재라 부른다. 이 곳은 산수가 아름답고 지세가 좋아서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눈길을 모으는 곳이다. 신라 26대 진평왕이 신하들과 함께 나라의 난을 피하고 국력을 길러 장차 국토 통일의 꿈을 이룩하려고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도중 이곳을 지나게 되었다. 그 일행은 상당 기간 동안 군자마을에서 묵게 되었는데 이곳에서 왕비가 갑자기 진통이 있은 후 왕자를 낳았다. 그리하여 이곳을 군자마을이라 이름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왕은 이곳에서 아들을 얻은 것이 왕실의 영광일 뿐 아니라 나라의 큰 경사라 하여 마을 건너 뒷산에 절을 짓고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기를 빌었다고 하여 그 절 이름을 안국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현재에도 안국사가 있다. 군자 마을에서 앞산을 바라보면 그 산 모양이 ... 벽송대사(碧松大師) [한 대사의 도 닦은 이야기] 어느 지방 어느 고을을 가나 사찰에 얽힌 이야기는 많이 있다. 이 이야기도 그러한 류의 이야기라고 하겠다.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에 가면 벽송사라고 하는 유명한 절이 있다. 이 절을 지은 벽송대사의 행적에 얽힌 전설을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450여년전 전라북도 부안에서 부안 송씨 가문의 한 집안에서 송지암(宋芝岩)이라는 아이가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두뇌가 총명하여 열 살 이전에 벌써 사서삼경을 다 읽었으며 스무살이 되던 해 어느 따뜻한 봄날에 조정에서 과거시험을 본다는 방이 붙었다. 지암은 무과에 응시하여 전국에서 모여든 쟁쟁한 무사들을 물리치고 당당하게 장원급제를 하여 장군의 칭호까지 받게 되었다. 그 당시는 나라가 어수선하여 외세의 위협을 받고 있을 때다. 중국의 명나라에서도 자주 트집을 잡아 괴롭혔고 국경의 침범이 심하... 변강쇠전 [함양 마천을 지리적 배경으로 한 판소리] 중년 (中年)에 맹랑한 일이 있었다. 평안도 월경촌(月景村)에 계집 하나가 살고 있었는데 얼굴은 춘이월 반쯤 핀 복숭아꽃이었다. 보조개(옥빈)는 어리었고 초생에 지는 달빛이 눈썹 사이에 어리었다. 앵두처럼 고운 입술은 당채(唐彩)주홍필로 찍은 듯하고 버드나무같이 가는 허리는 봄바람에 하늘 하늘, 찡그리며 웃는것과 말하며 걷는 것이 서시와 포사라도 따를 재간이 없었다. 그러나 사주에 청상살이가 겹겹이 쌓인 까닭에 상부(喪夫)를 한 것이 징글징글하게 많아 팔자가 센 여자였다. 열다섯에 얻은 서방은 첫날밤의 잠자리에서 급상한(急傷寒)에 죽었고 열여섯살에 얻은 서방은 당창병(매독)에 죽었다. 열일곱과 열여덟에 얻은 남편은 용천병과 벼락으로 각각 죽었다. 열아홉, 스무살에 얻은 서방도 급살로 죽었다. 뿐만 아니었다. 간부, 애부, 새흘유기, 입 한번 맞춘 ... 선유정(仙遊亭)의유래 [선녀와 살던 사냥꾼]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고 거북이가 용궁에 드나들던 시대의 이야기로서 방장산(지금의 지리산)기슭 마천면 삼정리 하정마을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이 삼정계곡은 벽소령으로 올라가는 계곡으로 공기가 맑고 물이 깨끗하기로 유명합니다. 지리산 계곡중에서도 경치가 아름다울 뿐아니라 조용한 계곡입니다. 이 곳에 인걸이라는 사내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냥 생활을 하며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비록 재산은 없고 빈 털털이로 산속에서 그날 그날을 살아가지만 아무런 근심걱정 없이 가장 행복하고 마음 흐뭇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산속으로 들어가 산짐승을 사냥해다가 어머니를 봉양하며 사는데 만족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냥 다니는 길목에서는 매일 꼭 세 차례식 아름다운 무지개가 섰다가 꺼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상하게 생각하며 유... 영원사의 황소목 [문구멍으로 황소가 들어오다] 영원사는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지리산 중턱인 해발 920미터에 위치한 절이다.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통일신라 시대에 지었다고 하며 그 당시 고승이었던 영원대사가 이룩했다고 하여 절 이름도 영원사라고 불렀다 한다. 한때 내지리에서는 제일 가는 이름있는 사찰이라고 했다. 지금은 명성만 지닌 채 초라한 절이 되어 스님 한 분만이 폐허가 된 사찰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이 절의 규모로서는 너와로 된 선방이 9채에 100간이 넘는 방이 있었으며 이 곳에서 도를 닦은 고승이 많았다고 한다. 고승들이 거쳐간 방명록이라고 할 수 있는 보실안록을 보면 부용영관, 서산대사, 청매, 사명대사, 지안, 설파상언, 포광스님 등 당대의 쟁쟁한 고승들이 109명이나 이 곳에서 도를 닦았다는 기록이 있다. 서산대사가 도를 닦기 위해 불제자로 입문할 때 남원군 산내면에 위치한 달궁... 의평의 망부목(望夫木) [젊은 선비들의 교훈이 된 부부] 마천면 의중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조선 선조때에 함양박씨 후손인 사신(士信)과 사성(士成) 두 형제가 이 마을로 들어와 살게 되었다. 처음에는 마을 동남쪽 삼백미터 지점인 현재의 쉰재들에 자리잡아 살다가 한 분은 의중 마을로 와서 살고 한 분은 의평마을로 들어와서 계속 대를 이어 살았다고 한다. 그 뒤 의평마을은 함양박씨 씨족들이 점점 번창하여 씨족마을로 변해갔다. 그런데 이 마을 한 가운데는 수령이 육백여년이나 되는 느티나무가 한그루 서 있다. 마을 사람들과 고락을 같이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마을에서는 참으로 보배로운 나무로 여기고 있다. 이 느티나무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서리어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산골 마을이지만 이 마을은 함양박씨가 모여 살면서부터 학문을 숭상하고 예의 범절을 엄히 가르치며 양반 행세를 톡톡히 하고 지냈던 것... 창암산 오씨네 [장군대좌설 단지스님이 이른 명당] 지리산 기슭에 높이 923미터의 창암산이 마천면 강청마을 뒷산으로 우뚝 솟아 있다. 정상에는 비녀바위가 있고 그 아래에 상투바위가 있다. 그 두 바위 사이에 나주 오씨 오낭원의 무덤이 있는데 그 곳이 장군대좌설의 명당이라 전해지고 있다. 이 명당의 무덤 자리가 잡히기까지의 전설이 전해오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마천면 도촌마을에 살던 오낭원은 동네에서 인심이 좋기로 이름나고 덕망이 높은 사람으로 모두가 존경하였다. 가산이 넉넉하여 잘 살았기 때문에 그의 큰 사랑방에는 손님이 끊일 날이 없었고 어떤 사람은 3년, 또 어떤 사람은 5년까지 그냥 눌러붙어 식객이 되어 살다가 떠난 일도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런 부류의 나그네 가운데 한 사람이 3년간이나 묵고 있다가 가면서도 아무 인사말 한 마디 없이 무례히 떠나게 되자 성품이 좀 갈갈한 오씨의 맏아... « ‹ 1 2 › » 담당 문화체육과 문화예술담당 (☎ 055-960-4610) 최종수정일 2023.09.18 11:26:31 만족도 조사 현재 열람하신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십니까? 평가 매우 만족함(5점) 만족(4점) 보통(3점) 불만족(2점) 매우 불만족(1점) 의견 등록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