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천면

함양의 전설

탄촌마을 문정리 [고려충신 이백년과 이억년이 은거하던]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는 본군의 남쪽 깊은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다.
산이 사방으로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울창한 숲속 맑은 시냇물 소리가 옥을 굴리는 것처럼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경관이 펼쳐지는 산 좋고 물 맑은 마을이다.

그러나 이곳 마을 사람들에게 산수의 아름다운 경관은 주어졌으나 교통이 불편하여 바깥 세상과 단절되고 정작 생계를 꾸려가는 논밭이 부족했다.
경치만 보고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이 마을 사람들은 여름이면 산을 쏘다니며 부지런히 약초를 캐고 버섯이나 나물을 채취하며 사냥을 하고 살아왔다.

그리고 겨울이면 눈비가 오나 바람이 불거나 매양 산으로 돌아다니며 나무를 베어다가 숲을 구워서 함양장에 내어다 팔아야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붙여진 이름이 탄촌(숯구지)이라 하게 되었다.

일설에는 이곳의 지리적 형태가 풍수지리학상으로 보면 거북이가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이기 때문에 잘 '숙' 자 거북 '구' 자를 써서 숙구지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이 고장은 산간 마을이기 때문에 여름이면 비가 많이 오고 겨울이면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라서 교통이 두절되기가 일쑤다.
비록 그들은 가난하게 살지만 마음은 부유하였다. 깊은 계곡에 살지라도 그들의 마음은 항상 평화로웠다.

그러기에 이 고장을 떠나지 못하고 대를 이어 살아가고 있었다. 세상을 등진 생활이라고 해도 복잡한 도시에서 서로 으르렁거리고 밀고 밀리면서 넘어지고 쓰러지는 그러한 생활보다는 도인처럼 산간에서 평화롭고 다감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때묻지 않은 생활 순박한 인간성을 지닌 순수한 사람들이었다.

때는 고려말이었다.
세상은 어수선하고 나라의 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어지러운 세상 겨울 어느날 산은 온통 눈으로 덮여 있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몹시 추운 겨울날이었다.

의외에도 이 깊은 골짜기 탄촌을 찾아온 두 선비가 있었다.
기울어져가는 고려를 한탄하면서 세상을 등지고 초야에 묻혀 여생을 보낼려고 찾아온 충신 이백년과 이억년 두 형제였다.
그들은 이 마을에 은거하면서 임금에 대한 마지막 충절을 지키기로 작정하고 이곳에 들어 온 것이다.
여기서 나라의 운명을 염려하고 글을 읽으며 지내다가 세상을 떠났다. 망해버린 고려의 운명과 함께한 것이다.

두형제(이억년과 이조년)가 길을 가다가 우연히 금덩이를 줍게되고 이때문에 형이 미워진 이조년은 금덩이를 한강물에 던져 버리고 연유를 물은 이억년 역시 자신도 동생이 미워짐을 느끼고 역시 강물에 금덩이를 던져 버려 금덩이 대신 형제간의 진한 사랑을 선택했다는 유명한 트금탄전설이 서울 강서구에 내려오고 있으며 그 투금탄 전설의 주인공 이억년의 묘소가 문정마을 뒷똑 개울건너 마을 바로 맞은편 산기슭에 안장되어 있어 마을 사람들에게 강직한 충절과 따스한 인간사랑의 실천을 한 주인공으로서 추앙을 받고 있으며 문정마을에는 두 충신의 교훈을 사람들에게 심어주고 있다고 하여 두충신의 이름에서 붙여진것으로 백년동 억년터란 지명이 현재까지 구전되어 오고 있다.

이는 백년, 억년 동안 이 충신들의 은덕으로 말미암아 풍년이 들고 평안하게 살아가기를 기원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이들 두 충신이 이곳에 은거한 이후로 이 탄촌 마을을 성촌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한다.

그 후 지금부터 오백여 년전 일두 정여창 선생과 탁영 김일손 선생이 지리산 등산을 하게 되었다.
그 때 탄촌마을 당산에서 잠깐 쉬면서 이 마을의 지리를 두루 살펴보고는 앞에는 문필봉이 우뚝 솟아있고 뒤에는 높은 삼봉이 있으니 후생들이 가히 살만한 곳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 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고장의 산수를 소중히 여겼고 또한 언젠가는 이 곳에서 훌륭한 인물이 태어나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고 한다.

1618년(광해군10년)에 지지재 강대량이 이곳을 지나다가 자연의 수려함과 기개를 보고는 훌륭한 문인이 이곳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했다하여 탄촌을 문동으로 불렀으나 구 한말에는 일두 정여창의 시호를 빌려서 문헌동으로 개칭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통탄스럽고 억울한 침략을 당하게 되자 훌륭한 문필가와 충직한 장수가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문헌동을 문정동으로 개명하여 오늘에 이러렀다고 한다.

이러한 지리적 배경으로 인해 이 고장 사람들은 항상 희망을 걸고 살아 왔으며 언젠가는 반드시 이 고장에서 위대한 인물이 태어날 것이라고 믿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자기네 가문에서 일어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어 이 고장 사람들은 남달리 교육에 관심이 많았고 교육열이 높았다고 한다.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다. 인간은 희망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곳 사람들은 훌륭한 인재가 반드시 태어날 것이라는 굳은 신념에서 끊임없이 노력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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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문화관광과 문화예술담당 (☎ 055-960-4510)
최종수정일
2023.08.10 14: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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