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천면

함양의 전설

괴바우소(沼)와 산적들 [산적들을 깨우친 사냥꾼]

마천면 소재지에서 백무동을 향해 나가면 실덕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곳 마천초등학교에서 송알 삼거리에 괴바우라는 소(沼)가 있다.
한신계곡의 물이 백무동을 거치고 벽소령에서 삼정을 거쳐 내려오는 맑은 물은 강청에서 만나 이 괴바우소를 흘러오게 되어있다.

이 괴바우소가 있는 냇물을 따라 지금은 2차로 도로가 나서 아스팔트로 깔려 있지만 옛날에는 험한 골짜기였다.
도로에서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으로 내려가 보면 괴바우소 주변에는 넓은 반석이 50여평가량 깔려있어 관광철이면 때때로 외지의 관광객들이 이 너럭바위에서 놀다가 가기도 하는 곳이다.

괴바우소에는 이곳에 숨어 들어와 사는 판서의 딸 숙영과 지리산에서 사냥을 하는 사냥꾼 랑, 그리고 산적들에 관한 전설이 서려있다.

옛날에 조정에서 역적으로 몰려 죽음을 당해야 할 처지에 놓인 판서가 있었다.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반대파의 모략이 빚어낸 음모 때문에 본의 아니게 역적이 되었던 것이다.

억울하게 역적으로 몰린 판서는 그대로 앉아서 고스란히 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밤중에 몰래 지리산으로 피하여 은둔생활을 하기로 하여 그의 아내와 함께 평민복으로 변장을 하고 길을 떠났다.

그들 판서 부부가 도망쳐 들어온 곳이 이곳 지리산 마천골이었다.
그는 이곳에 도착하여 철저하게 자기 신분을 감추고 평민이 되어 버렸다.
그와 그의 아내는 화전을 일구고 조와 콩을 심어 생계를 이어갔다.
골짜기마다 박혀있는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있더라도 그의 신분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변신했다.

속세를 떠나 신선같은 생활에 오히려 마음편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을 사는동안 그의 아내는 임신을 하고 딸을 낳게 되었다.
외롭게 산골에 숨어 사는 그들에게는 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은 그 딸을 숙영이라고 이름을 짓고 금이야 옥이야 하며 정성껏 키웠다.
선녀같이 아름답고 예쁜 숙영이었다. 짙은 눈썹에 큰 눈동자, 앵두같은 입술에 복사꽃 같은 볼, 이목구비가 흠잡을데 없이 뚜렷하였다.
숙영은 세월이 갈수록 아리따운 처녀로 변모해갔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는 점점 몸이 쇠약해지고 늙어가고 있었다.
어느덧 오랜 세월이 지나가고 그녀의 부모도 점점 몸이 쇠약하여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녀는 홀홀 단신 외로운 산골에 홀로 남게 되었다. 서로 피를 나눈 일가붙이 하나도 없는 그녀는 이 깊은 산속에서 막막한 생활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부모를 잃고 슬픔과 막막함에 힘겨워하고 있을 때 '랑'이라는 사냥꾼을 알게 되었다. 사냥꾼 랑은 젊은 총각으로 어딘가 모르게 당당한 위풍이 있어 보이는 청년이었다.

숙영과 랑은 서로 자주 만나게 되었고 서로의 외로움을 위로하다가 동정과 위로가 사랑으로 변하고 마침내는 뜨거운 애정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하루도 보지 않고는 배겨날 수 없는 뜨거운 사랑에 빠져 결국 그들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한집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하루하루가 행복한 날들이었다.
랑은 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집도 깨끗이 수리를 하였다.
싸리 울타리이기는 하지만 울도 새로 고치고 울밑에 호박도 심었다.

그런데 이들 행복한 부부에게도 슬픔이 찾아왔다.
그 당시 지리산에는 산적들이 많았는데 산속에 둔쳤다가 기회만 있으면 민가를 급습하여 도둑질을 해가고 살인도 하였다.

산골에서는 호랑이나 곰 등 짐승들보다도 더 무서운 게 이들 산적들이었다.
숙영과 랑 이들 부부의 단란한 가정에 찾아온 슬픔도 바로 이들 산적때문이었다.

어느날 집을 비우고 부부가 같이 밭에서 콩을 심고 있을때, 그의 집에서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불길이 뻘겋게 피어 올랐다.
그들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해버렸고 마굿간에는 기르던 소가 없어졌다.
그들은 삽시간에 보금자리와 모든 것을 잃고 절망감에 휩쌓였고 살아 갈 일이 막연하였다.

짐승같은 산적들의 소행이 틀림 없었다.
얼마전에 강청마을에도 산적떼가 나타나 소를 몰아가고 곡식을 강탈해 갔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 부부는 탄식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힘을 내어 다시 집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산에서 나무를 베어다가 대충 얽어서 사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랑은 먹을 것이 없어 사냥을 떠나게 되었다.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자 계곡에 기이한 암석이 풍광이 있고 또한 맑은 물이 담겨 있는 소가 있었는데 그 소를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이곳은 숲이 우거지고 사람이 다니는 소로길이 없었지만 랑이 이곳으로 사냥을 간 것은 아무래도 인적이 닿지 않는 곳에 곰이나 사슴 여우 등 짐승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괴바우소를 지나려하자 소 주변에서 가느다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랑이 살금살금 다가가보자 봉두난발을 하고 수염을 깍지 않은 험상궂은 사내 예닐곱명이 고기를 구우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틀림없이 산적이 분명했다.

또한 그들이 굽고 있는 고기도 다름 아닌 황소가 틀림없었다.
그들을 보자 피가 치솟아 당장 쏘아 죽이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오라, 저놈들이 우리집의 소도 잡아간 놈들이 틀림없구나. 또 어디서 소를 잡아왔지? 내 의당 싸가지없는 이놈들의 버릇을 고치고 말리라.’
하고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그는 살금살금 더 가까이 다가가 전통에서 화살을 꺼내어 활에 재고

'이놈들 누구냐 ?'

하고 소리쳤다.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놀란 산적들은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자 랑은 차례로 화살을 산적들의 허벅지를 향해 쏘아 모두 명중시켰다.
날아가는 참새도 쏘아 맞힐 정도의 뛰어난 궁술을 가진 랑의 화살에 그들은 정통으로 얻어맞았다.

'이놈들아 ! 모두들 칼을 버리고 무릎을 끓어라. 아니면 염통을 쏘아 황천길로 보낼테다. 내가 일부러 허벅지를 스치듯 가볍게 상처를 냈다만 만약 반항하는 놈이 있으면 절대 용서치 않으리라'

하고 랑은 우렁찬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에 산적들은 빼어난 궁술도 처음 보았거니와 목소리도 보통이 아닌지라 굴복을 아니할 수 없었다.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무슨 일이든지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하고 산적들은 무릎을 꿇고 한결같이 빌었다.

사냥꾼 랑은 괴바우소 넓은 바위에서 그들을 훈계하고 선도하자 이에 감화를 받은 산적들은 죄를 크게 뉘우치고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로 결의하였다.
마음을 고쳐먹고 땀흘려 일해서 보람된 삶을 살겠다고 약속했다.

산적들은 사냔꾼 랑을 대형으로 모시고 한 마을에 터를 잡고 살게 되었다.
그들이 살던 마을이 덕전리 매암마을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랑과 숙영부부는 산적들이 모두들 가정을 갖고 매암마을에 호형호제하며 행복하게 살수 있도록 도왔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랑과 숙영 부부가 세상을 떠나고 후세 사람들은 그들을 기리기 위해 매암마을 뒤편에 서있는 큰 바위를 장군과도 같은 기풍을 가진 랑의 바위라 하여 장군바위라 명명하였고 매암마을 앞에 바위가 하나 있는데 이 바위는 가정에서 따뜻하고 풍요함을 상징하는 그릇과도 같은 바위라 하여 두꿰바위(두껑바위)라 부르게 되었다.

두꿰바위는 밑에서 보면 밥그릇에 두껑을 덮어둔 형상을 하고 있다. 지금은 매암마을에 곽씨, 윤씨, 강씨들이 살고 있지만 이들이 살기전부터 랑과 숙영부부의 후손과 산적의 후손들이 살아왔다고 전한다.

한편 괴바우소에 있는 너럭바위에는 산적들의 상처난 허벅지에서 튄 핏물이 떨어져 붉은 핏자국이 구슬처럼 박혀있고 그들이 고기를 구워먹던 바위는 검은 색을 띠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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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과 문화예술담당 (☎ 055-960-4510)
최종수정일
2023.09.18 11: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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