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읍

함양의 전설

고동바위 [한 장애자 부부의 숭고한 애정]

여기에 애처로운 사랑 얘기가 있다.
가난해도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의지하며 즐겁게 살아가는 부부사이의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슬픈 이야기가 많이 있다.
가난하면서도 사랑하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뜨거운 사랑, 그리고 고통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 그러한 사랑을 주고 받는 가운데서 행복은 싹트는 것이다.

함양읍에서 서쪽으로 십리길을 소백산맥 중턱으로 올라가면 아늑한 분지로 된 고원지대가 나온다. 이곳에 있는 마을이 웅곡마을이다.

웅곡리 한들재의 왼편 산 기슭에는 고동처럼 생긴 시커먼 바위가 있다. 사람들은 이 바위를 고동(다슬기)같이 생겼다고 해서 고동바위라고 부른다.
이 고동바위는 날씨가 궂고 비가 올 때가 되면 처량한 소리로 울어대곤 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해 주고 있다.

옛부터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있는데 효자의 지극한 효성이나 열녀의 뜨거운 정성으로 인해서 이해할 수 없는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전설적인 이야기나 일들을 종종 보고 들을 수 있다.

이 고동바위는 장애자들이면서도 불우한 운명에 굴하지 않고 굳굳하게 서로 사랑하고 도우며 살아가면서 남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자기의 몸을 아끼지 않고 애쓰다가 죽어간 한 여인의 한 많은 사연의 전설이 서려 있다.

이 분지에 지금과 같이 큰 마을이 형성되기 전의 먼 옛날의 이야기다.
서로 위하고 지극히 사랑하는 한 부부가 이 곳에 살았는데 남편은 곱사등이었고 부인은 말을 못하는 벙어리였다.
이들 부부는 신체장애자로서 서로 불편한 몸이였지만 부부사이의 금슬은 어느 부부보다도 좋았다.
서로 위로하고 서로 도우며 다정하게 살아갔다.

농지의 면적은 그리 많지 않은 땅이었지만 남편은 열심히 농사일을 하였고 부인 역시 남편을 도와 가정일, 들일 할 것 없이 열심히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아갔다.

인간 생활은 아무리 행복해도 항상 불운의 그림자가 따라다니게 마련이다.
이들 부부에게도 재미있게 사는 중에 예기치 않았던 불운이 다가오게 되었다.

어느 날 산에 나무하러 간 남편이 자칫잘못 실수하여 그만 비탈에서 미끄러져 허리를 심하게 다치고 말았다.
허리를 다친 남편이 병석에 누워 농사일을 혼자 도맡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남편의 병은 반년이 지나고 일년이 지나도 차도가 없었다. 정성을 다해 간호를 하였지만 몸이 완쾌 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점점 더 악화되어 갔다.
남편은 고통속에서 신음하고 부인은 슬픔 속에서 나날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남편은 구미가 떨어지고 음식을 먹기가 힘들었다. 부인이 정성스럽게 마련해 주는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아 먹지 못하고 미룰 때가 대부분이었다.
부인은 그럴 때마다 자기 정성이 부족해서 그런 줄 알고 슬픔과 괴로움 속에서 온갖 정성을 다하였다.

입맛이 떨어져 음식을 변변히 먹지 못하는 남편이 어느날 고동국(다슬기)이 먹고 싶다고 하였다.
남편을 위해 모든 정성을 기울리는 부인은 남편의 입맛을 돋우기 위해 고동을 잡아오기로 하였다. 내일 아침 밥상에는 꼭 고동국을 시원하게 끓여들이겠다고 남편에게 약속을 하고 고동을 잡으러 나갔다.

이 분지는 높은 지대요, 계곡물이 차기 때문에 고동이 별로 없다.
부인은 십리나 떨어진 함양의 위천수로 고동을 잡으러 내려갔다.
그러나 때가 고동잡을 철이 아니었다. 계절은 한 겨울이었고 시간적으로는 해가 넘어가고 어둠이 밀려오는 저녁이었다.

오로지 남편의 건강만을 생각한 탓으로 부인은 때가 겨울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고동국을 끓여드리겠다고 했던 것이다.
밝게 비치는 달빛아래서 고동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 강바닥을 뒤지기 시작하였다.
돌을 들어내고 강바닥을 훑었다.
남편을 위한다는 일념으로 얼음이 얼어 있는 곳은 얼음을 깨고 고동을 찾아 온 강을 헤매었다.

몇 시간을 찾아 헤매었을까.
그 추운 한겨울밤 강물에서 추위도 잊은 채 미친 듯이 헤매고 다녔다.

밤새도록 헤매다가 달이 지고 아침해가 떠오를 즈음에 냇물가에 고동이 수북히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 밤이 새도록 찾았던 고동이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찾게되자 꽁꽁 얼어버린 자기의 몸을 생각지도 않은 채 바구니에 그것을 주워 담기 시작하였다.
부인이 짐으로 향했을 때는 밤을 지새워 헤맨 탓으로 부인은 하얀서리가 온 몸을 뒤덮고 있었다.

부인의 정성이 남편에게 전해지기도 전에 애쓴 보람도 없이 부인의 몸은 겨울 아침의 찬바람에 굳어지기 시작하였다.
부인은 길가에 쓰러지면서 고동 바구니의 고동이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부인은 가물거리는 의식가운데 고동을 남편에게 끓여드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고동을 한움큼 쥐고서는 그만 영영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해가 중천에 뜨고 햇살이 퍼지기 시작해서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부인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남편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달려가 사방에 흩어져 있는 빈 고동껍데기와 이에 둘러쌓여 누워 있는 부인을 끌어안고 목놓아 울었다.
부인에 대한 자신의 죄책감으로 하여 하늘이 무너지도록 울고 또 울었다.
아무리 운들 죽은 자가 다시 돌아올 리가 없다.

남편은 그 근처에 자리를 잡아 부인의 시체를 묻고 부인이 움켜쥐고 있던 한움큼의 고동껍질도 함께 묻어주었다고 한다.
어느 날 부인의 무덤 곁에는 고동같이 생긴 시꺼먼 바위가 하나 생겨났다.
이 바위는 궂거나 비가 오면 남편에게 드릴 고동이 떠내려갈까봐 처량한 소리로 운다고 한다.

비록 말못하는 벙어리오. 가난한 산골의 촌부이지만 남편을 사랑하고 위하는 그 뜨거운 마음은 누구도 따를 수 없다.
건강한 어느 여인보다도 교육을 많이 받은 양반집 규수보다도 부유한 생활을 누리는 윤택한 여인 보다도 숭고한 정신의 소유자라 하겠다.

부인의 무덤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되었지만 지금도 그 자리에 고동바위는 남아있어 남편에 대한 부인의 지극한 사랑을 되새기게 해 주고 있다.
그리고 이 지방의 여인들에게 남편을 사람하고 위하는 표준이 되고 교훈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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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문화관광과 문화예술담당 (☎ 055-960-4510)
최종수정일
2023.09.18 11:2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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