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 게시물 검색 제목 내용 검색 총 64 건의 글이 있습니다. (3/7 페이지) 창암산 오씨네 [장군대좌설 단지스님이 이른 명당] 지리산 기슭에 높이 923미터의 창암산이 마천면 강청마을 뒷산으로 우뚝 솟아 있다. 정상에는 비녀바위가 있고 그 아래에 상투바위가 있다. 그 두 바위 사이에 나주 오씨 오낭원의 무덤이 있는데 그 곳이 장군대좌설의 명당이라 전해지고 있다. 이 명당의 무덤 자리가 잡히기까지의 전설이 전해오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마천면 도촌마을에 살던 오낭원은 동네에서 인심이 좋기로 이름나고 덕망이 높은 사람으로 모두가 존경하였다. 가산이 넉넉하여 잘 살았기 때문에 그의 큰 사랑방에는 손님이 끊일 날이 없었고 어떤 사람은 3년, 또 어떤 사람은 5년까지 그냥 눌러붙어 식객이 되어 살다가 떠난 일도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런 부류의 나그네 가운데 한 사람이 3년간이나 묵고 있다가 가면서도 아무 인사말 한 마디 없이 무례히 떠나게 되자 성품이 좀 갈갈한 오씨의 맏아... 춤새골 동매정 [기우제와 파랑새로 변한 도승] 마천면 소리목 마을에는 춤새골이라고 불리는 동리가 있고 그 동리 한 복판에는 동매정이라는 정자가 하나 있는데 그에 얽힌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지금부터 약 400년전 조선 선조 때의 이야기다. 왜구들의 잦은 침입과 오랫동안의 가뭄으로 동리 사람들의 민심은 박할 대로 박해지고 전쟁을 위한 군량미를 조정에서 거두어 가고 가뭄으로 인해 민심은 흔들리어 고을 원님은 기우제를 지내기로 결심하였다. 기우제를 지내기로 한 바로 전날 밤, 소리목 마을의 김진사의 꿈에 백발이 성성한 웬 도승이 나타나 곧 바로 비가 내리게 될 것이니 걱정 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상하게 생각한 김진사는 이튿날 아침 일찍 고을 원님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말하였다. 그런데 창원마을의 박진사도 지난 밤에 한 도승이 현몽하여 고을 동헌을 창원마을로 옮기지 않으면 앞으로는 비... 여장군 넋을 달랜 이서구 군수 [담이 큰 선비의 모험] 휴천면 목골에 함양 여씨(咸陽呂氏) 여장군의 묘가 있다. 그 묘소는 풍수지리에서 노서하전(老鼠下田)이라고 하는데 늙은 쥐가 밭에 내려온 지형이라는 말이다. 고려말의 일이었다. 당시 왜구들이 자주 침입하여 우리 민족을 살상하고 재물을 노략하던 시대였다. 함양에도 왜구들이 자주 나타났고 이웃 남원시 운봉면에는 이성계 장군이 왜구들을 크게 무찔렀다는 황산대첩의 유적지가 남아 있다. 여장군은 그 당시 활약했던 인물로서 세상을 떠나고 오랜 세월이 지났다. 그 후손도 집안도 없었던지 장군의 묘를 관리하지 않아 황폐해지고 말았다. 봉분도 허물어졌으며 제사도 지내지 않아 그의 이름은 잊혀져 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함양에 군수가 부임하면 오는 사람마다 모두가 첫 날 밤에 죽고 말았다. 일이 이렇게 되자 함양군수로는 아무도 오지 않으려고 하였다. 또 가면... 오누이 비 [가난한 오누이의 비운] 우리 고장은 예로부터 선비의 고장이요, 충효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따라서 훌륭한 학자의 비석과 효자나 효부의 비석이 도처에 많이 흩어져 있는 고장이다. 이러한 사실은 유학자나 효자 효부가 많이 나온 고장이라는 뜻도 된다. 그런데 고을마다 즐비한 비석을 보면 효자나 열녀 효부들의 비석은 많이 있지만 오빠와 누이동생의 비석이 있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요, 우리 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비석이 아닌가 한다. 휴천면 목현리 면소재지에서 함양 쪽으로 약 1km 가량 나가다 보면 임호마을로 가는 길이 있는데 이 갈림길에 오누이 비가 있었다. 이 비석에 관한 내력이 전해오는 것을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때는 1587년 봄으로 함양에서 힘겹게 살아가던 오누이가 있었다. 먹고 살아가기가 막연해서 산골로 찾아온 곳이 지금의 휴천 땅이다. 이들 ... 용유담의 마적도사 [강변에서 지쳐 죽은 당나귀] 산과 계곡이 이 같이도 좋아서 천천한 걸음으로 나 다시 찾아왔네 은은하게 피어난 꽃 아름다운 빛 망망한 하늘에는 새 그림자 돌아오네 높은 벼랑은 영지 못에 떨어지고 맑은 낮 바람 소리 높이 우누나 놀란 용들아, 낮잠에서 깨어라 그대 불러 한 바탕 웃어 보리라. 뇌계 유호인 선생이 용유담에 대해서 읊은 시이다. 뇌계는 이 용유담을 비롯하여 군내 명승지를 찾아 두루 다니며 발길 닫는 곳마다 시정이 넘치는 좋은 글을 많이 남겼다. 엄천강의 상류에 있는 용유담은 마천면과 휴천면의 경계인 송전리라는 마을에 속해 있다. 지리산의 아름다운 계곡들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이 이 곳에서 합류된다. 깨끗한 물이 용유담에 이르러서는 해가 쨍쨍 내리쬐는 화창한 대낮에 우뢰 소리 같은 폭포의 쏟아지는 소리를 비롯하여 장방형의 평평한 호수를 이루게 된다. 화강암으로 ... 탄촌마을 문정리 [고려충신 이백년과 이억년이 은거하던]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는 본군의 남쪽 깊은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다. 산이 사방으로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울창한 숲속 맑은 시냇물 소리가 옥을 굴리는 것처럼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경관이 펼쳐지는 산 좋고 물 맑은 마을이다. 그러나 이곳 마을 사람들에게 산수의 아름다운 경관은 주어졌으나 교통이 불편하여 바깥 세상과 단절되고 정작 생계를 꾸려가는 논밭이 부족했다. 경치만 보고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이 마을 사람들은 여름이면 산을 쏘다니며 부지런히 약초를 캐고 버섯이나 나물을 채취하며 사냥을 하고 살아왔다. 그리고 겨울이면 눈비가 오나 바람이 불거나 매양 산으로 돌아다니며 나무를 베어다가 숲을 구워서 함양장에 내어다 팔아야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붙여진 이름이 탄촌(숯구지)이라 하게 되었다. 일설에... 한남의 새우섬 [한남군 이어의 유배지] 조선조 제4대 임금인 세종대왕의 18남4녀중의 열두번째 아들로 태어난 한남군(1429~1457) 이어 의 자는 군옥이요, 그의 어머니는 혜빈 양씨이며 시호는 정도공이다. 천성이 착하고 온순하였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세종대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불행하게도 한남군은 계유정난에 연루되어 함양군 휴천면 한남마을 앞 새우섬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그 곳에서 한 많은 일생을 마쳤다. 계유정난에 연루된 한남군은 사육신과 함께 처형되어야 한다고 신하들의 상소가 빗발쳤으나 형인 세조의 반대로 참형만은 면할 수가 있었다. 한남군은 이곳 함양땅에서 유배생활을 하다가 1459년(세조5년)유배지에서 병을 얻어 한 많은 일생을 마치고 말았는데 이곳 유배 생활에서 하루하루 괴로운 악몽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다. 그의 마음 속에는 항상 불충에 대한 죄책감과 세조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차 있었... 강선(降仙)바구 [한 처녀 장님의 눈을 뜨게한 신선] 유림면 국계리 남쪽에는 큰 바위가 하나 있는데 신선들이 내려와 놀았다고 하여 강선바구라고 부르고 있다. 이 바위 주변이 지금은 별로이지만 옛날에는 숲이 우거지고 공기가 맑고 아름다운 곳이었다고 한다. 옛날 아주 먼 옛날 강선바구 주변에는 가끔 오색 찬란한 서기가 어리곤 하였다. 그리고 어디선가 무지개빛같이 환상적이고 휘황찬란한 음악 소리가 들려오면 사방에서 학들이 모여들어 온 땅이 복지(福地)로 변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서기가 어리고 음악 소리가 들려오며 학들이 모여들때는 하늘에서 신선들이 봉황을 타고 내려와 바위 위에서 가야금을 퉁기고 피리를 분다고 한다. 그러면 인근 주민들은 그곳을 향해 절을하며 기도를 드리곤 하였다. “소생의 부모님이 천수를 누리게 도와주소서,” “저의 딸이 좋은 곳으로 시집가게 하여 주옵소서,” “올해는 풍년... 신효선의 효행 [겨울에 죽순과 대추를 구한 효자] 덕재 신효선은 거창신씨의 후손으로 1506년(연산군12)에 유림면 손곡마을에서 태어났다. '크게 될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격언이 있다. 신효선은 어려서부터 행동이 민첩하고 번쩍이는 재치, 뛰어난 재질을 엿볼 수 있었으며 어른들을 공경하며 효성이 또한 지극하였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효선의 효행에 대해서 같이 회상해 보고자 한다. 가난하고 살기가 어려운 시대일수록 겨울은 길고 춥다. 더욱 고통스럽고 견디기 어렵다. 병이 나도 치료하기가 어렵고 약을 구하기도 어렵다. 어려움 가운데서 효도를 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차디찬 한겨울의 어느날 효선의 아버님께서 갑자기 병환이 나셨다. 평소에 효성이 지극한 효선은 끼니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아버님의 병환에 대해서는 좋다고 하는 약은 팔방으로 뛰어다니면서 구해 다 드렸다... 어리석은 사람이 호랑이 잡은 이야기 [뚝심이 센 김생원집 머슴] 흔히들 '어리석은 사람이 범 잡는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뜻은 「어리석은 사람이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제 힘만 믿고 멋 모르고 덤빈다.」는 격언이기도 하다. 이 말의 유래는 한 어리석은 사내가 머슴살이를 하면서 범을 잡은 데서 연유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조선 영조때에 유림면 재궁마을의 김생원 집에 삼 년째 머슴살이를 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있었다. 뚝심이 세고 어리숙하여 시키는 일만은 잘하는 젊은이로서 어디서 태어났는지 그리고 그의 고향이 어디인지도 잘 몰랐다. 재궁마을 앞에는 경호강으로 흘러가는 맑은 물이 언제나 굽이쳐 흐르고 있다. 따라서 물고기들이 많이 오르내리는 곳이기도 하다. 봄철이 되면 강물따라 올라오는 삼수어들이 가을철에는 강 하류로 내려가게 된다. 물고기가 오르내리는 습성을 이용하여 살을 놓아서... « ‹ 1 2 3 4 5 6 7 › » 담당 문화관광과 문화예술담당 (☎ 055-960-4510) 최종수정일 2023.08.17 13:10:56 만족도 조사 현재 열람하신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십니까? 평가 매우 만족함(5점) 만족(4점) 보통(3점) 불만족(2점) 매우 불만족(1점) 의견 등록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