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강겸후 (姜謙厚) : 미상
- 작성일
- 2016-07-15 13:37:15
- 작성자
- 관리자
- 조회수 :
- 486
강겸후, 강관후, 강인후는 금재 강한 의 후손으로, 3형제가 지성으로 어버이를 봉양한 효자이다.
어머니의 병환에 변을 맛보고 하늘에 빌었으며, 위독하여서는 손가락을 잘라 주혈하여 5일을 회생하게 하였다. 어머님의 상을 당하여서는 초상의 예를 한결같이 예법에 따랐다.모진 추위와 심한 더위도 불구하고 성묘를 그치지 않았다.
후에 아버지가 등창으로 반신이 고름으로 헐었는데, 형제가 번갈아 입으로 고름을 빨았다. 두꺼비 회가 가장 좋다는 말을 듣고 '두꺼비야 어디 있느냐?'라면서 온 산을 절을 하고 돌아다니니, 겨울철 눈 속에서 문득 세 마리의 두꺼비가 뛰어 나오므로 회를 해 드려 효험을 얻었다. 아버지 상중에는 3년 동안 여묘에서 살았다.
1816년(순조16)에 동몽교관에 증직되고 정명이 내렸다.
지곡면 창평리 거평 마을 앞에 3형제 효자의 정려가 서 있다
어머니의 병환에 변을 맛보고 하늘에 빌었으며, 위독하여서는 손가락을 잘라 주혈하여 5일을 회생하게 하였다. 어머님의 상을 당하여서는 초상의 예를 한결같이 예법에 따랐다.모진 추위와 심한 더위도 불구하고 성묘를 그치지 않았다.
후에 아버지가 등창으로 반신이 고름으로 헐었는데, 형제가 번갈아 입으로 고름을 빨았다. 두꺼비 회가 가장 좋다는 말을 듣고 '두꺼비야 어디 있느냐?'라면서 온 산을 절을 하고 돌아다니니, 겨울철 눈 속에서 문득 세 마리의 두꺼비가 뛰어 나오므로 회를 해 드려 효험을 얻었다. 아버지 상중에는 3년 동안 여묘에서 살았다.
1816년(순조16)에 동몽교관에 증직되고 정명이 내렸다.
지곡면 창평리 거평 마을 앞에 3형제 효자의 정려가 서 있다
- 담당
- 문화관광과 문화재담당 (☎ 055-960-4540)
- 최종수정일
- 2023.11.17 13:4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