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강 현 (姜 顯) : 미상
- 작성일
- 2016-07-15 13:36:48
- 작성자
- 관리자
- 조회수 :
- 403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자는 현지(顯之), 호는 신안(新安)이며 본관은 진주로서 산청군에서 출생하였으나 함양군에서 자랐다.
1513년(중종) 사마시에 진사가 된 후 왕으로부터 《중용》1권을 하사 받았다. 1517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기사관·정언·사서를 거쳐 1524년 문학·지평이 되었는데 김안로의 간사함을 논죄하는 대간들의 의논이 일치하지 않자 극언하는 상소를 올려 그를 외지로 귀양보내게 하였다.
이듬해 전라좌도 어사로 나갔으며 교리·부응교·헌납·응교 등을 거쳐, 1526년 재해가 휩쓴 평안도에 순어사로 파견되었다.
1530년 종부시정으로서 충청도 어사로 나갔으며, 1532년 직제학에 승진되었다.
이듬해 대사성·이조참의를 역임하고, 1537년 승지로서 사은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538년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하였으나 성주사고(星州史庫)가 불에 타자 파직되었으며 예조 . 형조의 참판으로 있으면서 전에 함경도 관찰사로 있을 때 많은 관인들을 개인적인 일에 부렸다 하여 사간원의 탄핵을 받았다.
1544년 장례원판결사·내의원제조를 역임하고, 이듬해 공조참판으로 동지춘추관사를 겸하여 《중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어 형조판서·한성부좌윤을 거쳐 1551년(명종6) 경연특진관을 역임했다
1553년 세상을 떠났으며 시호는 혜평공(惠平公)이다.
1513년(중종) 사마시에 진사가 된 후 왕으로부터 《중용》1권을 하사 받았다. 1517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기사관·정언·사서를 거쳐 1524년 문학·지평이 되었는데 김안로의 간사함을 논죄하는 대간들의 의논이 일치하지 않자 극언하는 상소를 올려 그를 외지로 귀양보내게 하였다.
이듬해 전라좌도 어사로 나갔으며 교리·부응교·헌납·응교 등을 거쳐, 1526년 재해가 휩쓴 평안도에 순어사로 파견되었다.
1530년 종부시정으로서 충청도 어사로 나갔으며, 1532년 직제학에 승진되었다.
이듬해 대사성·이조참의를 역임하고, 1537년 승지로서 사은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538년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하였으나 성주사고(星州史庫)가 불에 타자 파직되었으며 예조 . 형조의 참판으로 있으면서 전에 함경도 관찰사로 있을 때 많은 관인들을 개인적인 일에 부렸다 하여 사간원의 탄핵을 받았다.
1544년 장례원판결사·내의원제조를 역임하고, 이듬해 공조참판으로 동지춘추관사를 겸하여 《중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어 형조판서·한성부좌윤을 거쳐 1551년(명종6) 경연특진관을 역임했다
1553년 세상을 떠났으며 시호는 혜평공(惠平公)이다.
- 담당
- 문화관광과 문화재담당 (☎ 055-960-4540)
- 최종수정일
- 2023.11.17 13:4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