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게시물 검색 제목 검색 총 48건의 게시물이 있습니다. (4/5 페이지) 문태서 (文泰瑞) : 1880~1912 구한말 호남의병대장으로 호는 의재(義齋)이며 부민후 문익헌의 후손이다. 고종때(1880)에 안의군 서상면 장고지에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의지가 견고하였다. 한일 조약후로 충군애국하는 마음이 가슴에서 우러나 생업을 버리고 1906년 창의하여 덕유산을 중심으로 경남, 전북, 충북, 경북등 광범위한... 2016-07-15 관리자 조회수 : 777 마정립 (馬挺立) : 1590~1636 장군은 병자 호란때의 충신이다. 장군의 선대는 조선의 개국후 대장군이 되었고, 1401년(태종1년) 동지총제가 되었으며, 장흥부원군에 피봉되었다. 그 후 높은 벼슬을 지내오던 가문의 후예로 마 정립에 이르렀는데, 장군의 호는 한남(漢南)이고, 병자호란에서 순직하였다. 공은 태어날 때부터 자색이 남다르며, 학문에 능하고 무예에 뛰어나, 인근 각지에서 우러러 보는 인물로 성장했다. 1634년 단양군수로 있을 때, ... 2016-07-15 관리자 조회수 : 630 노응규 (盧應奎) : 1861~1907 장군의 호는 신암(愼庵)이며 1861년 3월 15일 안의면 당본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학업에 힘써 일찍이 벼슬길에 오르게되고 규장각주사와 동궁시종관등을 역임하다가 을미사변 이후 낙향하여 거사를 준비하였다. 서재기, 정수현, 박준필, 임경희, 서경호등의 동지와 더불어 1896년 2월19일 의병을 일으켜 진주에 잠입, 관찰부를 습격 점령하니 관찰사 조동필과 경무관 김세진은 도망쳤다. 일행은 병영과 무기, 양곡등... 2016-07-15 관리자 조회수 : 653 노우명 (盧友明) : 1471~1574 조선 중기의 학자로서 자는 군량(君亮), 호는 신고당(信古堂)이며 세조때의 청백리 노숙동의 손자로서 본관은 풍천이고 교리를 지낸 노분의 둘째 아들이다. 일두 정여창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508년(중종 3) 형 노우량, 아우 노우영과 진사시에 나란히 합격하여 인근에서 노씨삼주(盧氏三珠)라 불렀다. 1518년 김안국이 경상도 관찰사로 있을 때 안우, 노필, 김대유등과 함께 관찰사의 추천으로 현릉(문종대왕과 현덕... 2016-07-15 관리자 조회수 : 584 노영만 (盧永萬) : 1870~1925 조선 말기인 개화시대의 교육 선구자인 선생은 백전면 오천리에서 아버지 노정현의 외동아들로 태어 났으며 자는 운경(雲卿), 호는 소당(素堂)이다. 어릴적부터 공부에 힘을 기울였던 선생은 경서에 남다른 지식을 가졌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인근에까지 그의 효행이 널리 알려졌다. 당시에 과거제도는 폐지되었고 나라 사정이 날로 어려워지던 26세때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로 향하였으며 27세때 말직인 궁내부 주사로 일... 2016-07-15 관리자 조회수 : 576 노숙동 (盧叔仝) : 1403~1463 조선 세종때의 문신이며 청백리로 기록된 선생의 자는 화중(和仲)이고호는 송재(松齋)로서 본관은 풍천이다. 1427년(세종 9) 친시문과 을과로 급제하고 승문원에 분관되었으며 박사·교리(校理)·사헌부감찰을 역임하고, 『자치통감훈의』편찬에 참여하였다. 그 후 집현전의 선입, 수찬을 거쳐 왕에게 교서를 지어 올리는 지제교를 지내면서 역대의 사적에서 정치인들의 사표가 될만한 사실을 뽑아 적은 책인 『치평요람』을... 2016-07-15 관리자 조회수 : 635 노사예 (盧士豫 ) : 미상 효자인 선생의 호는 홍와(弘窩)이고 신고당 노우명의 손자로서 본관은 풍천이다. 13세가 되던해에 아버지를 잃게 되자 슬퍼함이 어른과 같았으며 어머니가 병중에 계실 때 하늘에 기도하기를 자기가 어머니의 병환을 대신할 것을 원하였고 어머니의 죽음에 이르러 3년간 죽으로 시묘살이를 하였다.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함은 물론 친우에 대한 신의도 두터워서 보는 이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게 하였다. 임진왜란시에는 ... 2016-07-15 관리자 조회수 : 515 노 진 : 1518~1578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청백리인 선생은 현릉 참봉을 지낸 노우명의 둘째 아들이며 세종때의 청백리 노숙동의 증손으로 자는 자응(子應), 호는 옥계(玉溪)이며 본관은 풍천이다. 어릴 적부터 총명하고 품행이 단정하였으며 숙성함이 보통 아이들과 다르며 옆에 사람이 글을 읽기만 하여도 이를 듣고 곧 외우며 글 뜻을 이... 2016-07-15 관리자 조회수 : 661 김한익 (金漢益 : 1887~1933 우리민족에 대한 일본의 강압과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이어 1910년 8월 22일 '경술국치'라고 하는 한일합방의 치욕적인 사태가 발생되자 수많은 열사, 의사, 지사등이 자신과 가족을 돌보지 않은채 민족의 제단에 목숨을 바쳤다. 1919년 1월 고종황제가 돌연 승하하여 국장일이 3월3일로 정하여지자 항간의 민심은 일본을 의심하였고 국장일 이전에 민족의 자주독립을 쟁취 하고자 3. 1일을 기하여 파고다공원에서 독립을 외치... 2016-07-15 관리자 조회수 : 581 김종직 (金宗直) : 1431~1492 조선 초기의 성리학자이며 문신으로 공의 자는 계온(季溫), 호는 점필재(占畢齋)이고 시호는 문충공(文忠公)으로 밀양 출생이며 본관은 선산이다. 부친인 김숙자(金叔滋)와 어머니 밀양박씨 사이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공의 부친은 원래 경북 선산 사람이었으나 모친 밀양 박씨와 혼인하면서 장인이 왜국 대마도 ... 2016-07-15 관리자 조회수 : 849 « ‹ 1 2 3 4 5 › » 담당 문화관광과 문화재담당 (☎ 055-960-4540) 최종수정일 2023.11.17 13:41:59 만족도 조사 현재 열람하신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십니까? 평가 매우 만족함(5점) 만족(4점) 보통(3점) 불만족(2점) 매우 불만족(1점) 의견 등록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