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공원
04 일노당 양관 1437~1507
- 작성일
- 2016-07-13 9:56
- 작성자
- 관리자
- 조회수 :
- 889
조선 초기의 학자, 청백리로 이름을 떨쳤다.
함양 모간(효리)출생으로 세조3년 사마시 동 6년 무과에 급제하여 봉직할 때 정성을 다하고 근면하며 몸가짐이 맑고 살갔다. 덕천군수로 재직하다가 양민흥학에 힘쓰고 준법정신이 강했으며 청렴하고 검약하여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다.
임기 후 귀로의 행장을 검색하니 소학과 두보의 시집, 거문고와 삼베이불 한 채 뿐이었다. 임금께 보고되어 청백리안에 기록되고 임금께서 화공을 시켜 공의 행색을 그려 어전벽에 걸어놓고 관리들이 외직으로 부임할 때마다 그림을 가리키며 공을 본받으라 하였다. 부패한 시대일수록 옥 같은 청렴은 더욱 빛나고 만민의 존경을 받는다.
함양 모간(효리)출생으로 세조3년 사마시 동 6년 무과에 급제하여 봉직할 때 정성을 다하고 근면하며 몸가짐이 맑고 살갔다. 덕천군수로 재직하다가 양민흥학에 힘쓰고 준법정신이 강했으며 청렴하고 검약하여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다.
임기 후 귀로의 행장을 검색하니 소학과 두보의 시집, 거문고와 삼베이불 한 채 뿐이었다. 임금께 보고되어 청백리안에 기록되고 임금께서 화공을 시켜 공의 행색을 그려 어전벽에 걸어놓고 관리들이 외직으로 부임할 때마다 그림을 가리키며 공을 본받으라 하였다. 부패한 시대일수록 옥 같은 청렴은 더욱 빛나고 만민의 존경을 받는다.
- 담당
- 문화시설사업소 상림담당 (☎ 055-960-6720)
- 최종수정일
- 2024.01.01 15:2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