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석봉 고사목

흔히들 지리산의 표상을 이야기 하라면 제석봉 고사목을 이야기하곤 한다. 물론 제석봉 고사목의 처연함, 그리고 노을이 질 때의 낭만은 지리산의 상징처럼 여겨져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제석봉 고사목의 사연을 알고 나면 역사의식의 변환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제석봉 고사목은 늙어죽은 고사목이 아니라 비명횡사한 횡사목의 잔해이다. 6.25후까지만 하더라도 아름드리 전나무, 잣나무, 구상나무들이 울창하였던 제석봉은 자유당 말기 당시 농림부 장관의 삼촌되는 자가 권력을 등에 업고서 제석단에 제재소를 차려놓고 거목들을 베어내면서부터 수난을 당한다. 그러다가 후에(이 도벌사건이) 여론 화되고 말썽이 나자 증거를 인멸할 양으로 제석봉에 불을 질러 나머지 나무들마저 지금과 같이 횡사시켜 버렸다.

불법적 도발과 이를 은폐하기 위한 인위적인 방화로 지금의 제석봉이 되었다는 얘기인데 멀리서 제석봉을 바라 보노라면 마치 천왕봉 턱밑에 흉측한 마른 버짐자국이 생긴 것처럼 볼상사납기 그지없다.

자연 스스로의 노쇠과정 속에서 운치나 있을 고사목이 아니라 횡사목이라는 데서 그 어떤 미적 세계도 발견할 수 없는 지리산 임상 수난사의 처연한 기념물인 셈이다. 그나마 몇 그루씩 남아 있던 횡사목들마저 점차 쓰러져가고 있어 결국 얼마 안 가 제석봉 일대는 황무지로 변할 듯하다. 또 비만 오면 물을 머금지 못하고 그대로 흙탕물을 토해내는데 이점 때문인지 장터목 샘과 제석단 샘도 갈수기에는 종종 물이 고갈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결국 지리산을 갉아먹으면서까지 이윤추구에 혈안이 되었던 일부 인간들 때문에 오늘날 지리산을 찾는 수많은 후손들이 더욱 목말라 하고 있어 그 화를 톡톡히 입고 있는 셈이다. 1990년대 초반 제석봉에 어린 구상나무들을 심는 운동이 벌어졌었고, 그 나무들이 일부 자라고 있어 다행스럽다. (출처: 김 명수 저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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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과 관광기획담당 (☎ 055-960-4520)
최종수정일
2023.12.18 15:3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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