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판 및 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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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의 문화재

현판 · 기문

남계서원(蘫溪書院)

1566(명종 21년)

남계서원

남계서원 - 右

남계서원

남계서원 - 左

남계서원 사액 현판으로 특이하게 남계(蘫溪)와 서원(書院)이 두 개의 현판으로 나뉘어져 있다. 남계란 서원 앞을 흐르는 시내의 이름으로 ‘물이 넘친다는’ 뜻과 통하며, 연꽃을 의미하는 뒷산 연화산(蓮花山)과 함께 물이 풍부한 땅에 서원이 입지하였음을 함축한다.

남계서원기(蘫溪書院記)

1566(명종 21년)

남계서원

1566에 강익이 지은 기문으로 1552년 ~ 1562년의 남계서원 건립과정과 정여창의 학덕을 칭송하고 있다. 말미에 남계서원이 조선에서 두 번째로 창건되었음과 당시 건립을 주도한 서구연, 윤확, 김우홍 3인의 공을 칭송하고 있다.

준도문(遵道門)

16세기

남계서원

남계서원 창건 당시 1층 외삼문(입구문)의 현판으로 현재는 풍영루 안쪽에 걸려 있다. 준도란 중용의 ‘군자는 알아주는 이가 없어도 도를 쫓아 행한다’는 뜻이다. 어려움을 무릅쓰고 도를 실천해야 한다는 군자의 마음 자세를 의미한다.

명성당(明誠堂)

16세기

남계서원

남계서원 강당의 현판으로 ‘명성’이란 『중용』의 ‘참된 것을 밝히는 것을 가르침이라하니, 참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참되게 된다’는 뜻이다. 교육을 통해 참됨에 이르게 한다는 의미이다.

풍영루(風詠樓)

1841(현종 7년)

남계서원

남계서원 문루의 현판으로 멀리 보이는 지리산의 봉우리들과 화림천의 흐름에서 정여창의 모습과 기상을 떠올릴 수 있다. 「논어」의 내용 중 ‘기수에서 멱 감고 무에서 바람을 쏘이고 노래하며 돌아오겠다는’ 중점의 뜻을 바로 여기서 느낄 수 있다하여 풍영루라 이름 지었다 한다.

풍영루기(風詠樓記)

1841(현종 7년)

남계서원

1840년 유림들이 의견을 모아 풍영루의 증축을 결정하고 이듬해 6월에 완공한 사실과 중건을 주도한 인물들의 공을 칭송하고 있다. 정환필 지음

풍영루중건기

1849(헌종15)

남계서원

1840년 유림들이 의견을 모아 풍영루의 증축을 결정하고 이듬해 6월에 완공한 사실과 중건을 주도한 인물들의 공을 칭송하고 있다. 정환필 지음

양정재(養正齋)

16세기

남계서원

남계서원의 동재의 현판으로 주역의 ‘교육함으로써 사람을 바르게 기르는 것은 성인의 공덕이다’라는 것에서 따온 말이다. 사람은 교육을 통하여 양성되어야한다는 의미이다.

보인재(輔仁齋)

16세기

남계서원

남계서원 서재의 현판으로 논어의 ‘군자는 글로써 벗을 사귀고, 벗으로써 인을 돕는다’고 한 것에서 따온 말이다. 정여창과 김굉필이 벗으로서 서로 도운 사우 관계를 함축하고 있다.

  • 함양 남계서원
  • 50021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남계서원길 8-11
  • TEL : 055-962-1438 E-mail : yeoss47@hanmail.net
  • 아름답고 소중한 남계서원 세계의 문화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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