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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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소개

일두 정여창

一蠹 鄭汝昌

정여창(1450~1504)은 남계서원 서북쪽에 위치한 함양 개평리에서 태어났으며 점필재 김종직(佔畢齋 金宗直)이 함양군수로 있을 때 그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젊은 시절부터 학문으로 이름이 높았던 정여창은 성균관에서 학문을 닦았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고, 이후 지리산 아래 섬진나루에 은거하였다. 한때는 세자의 스승이 되어 연산군을 가르치기도 했으나, 1498년(연산군 4년) 무오사화 때 김종직의 제자라는 이유로 함경도 종성에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신은 문인들이 무려 2달에 걸쳐 함양까지 옮겨와 남계서원 뒤 승안산 기슭에안장하였다. 정여창은 1610년(광해군 2년) 문묘*에 종향되었다.

문묘(文廟)

공자의 사당으로 성균관과 향교에 중국과 우리나라의 명현 위패를 봉안해 모시는 곳

동국 18현

문묘에 종사된 18명의 한국 유학자들→ 설총, 최치원, 안향, 정몽주, 정여창,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 김인후, 이황, 성혼, 이이, 조헌, 김장생, 김집, 송준길, 송시열, 박세채

개암 강익

介庵 姜翼

강익(1523~1567)은 함양 수동 효리(효우촌)에서 태어났다. 15세에 학문을 시작하였으며 당곡 정희보와 남명 조식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학문을 시작한지 10여 년 후 위기지학(爲己之學)에 눈을 뜬 그는 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도심(道心) 회복과 사문흥기(斯文興起) 창명유교(倡明儒敎)’의 실현을 위해 45세 일생을 바쳐서 남계서원 창건에 진력했다. 남계서원 초대원장(1561년)이 되었으며 1689년(숙종 15년)에 남계서원에 배향되었다.

동계 정온

桐溪 鄭蘊

정온(1569~1641)은 함양 출신으로 15세 때에 처음으로 임훈을 찾아가 제자가 되어 학업에 정진하였으며 늦은 나이로 과거에 급제하여 성균관에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중요한 직책을 맡으며 정계의 중심인물로 부상하였고, 1636년(인조 14년) 병자호란 때는 남한산성까지 인조를 호종하였다. 그러나 인조가 항복하자 수치를 참을 수 없다고 하며 자결을 시도하였으며, 이 또한 실패하자 향리로 돌아와 은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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