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현황/지명유래

지곡면 덕암리 덕암

지곡면 덕암리 덕암 상세 내용 마을명, 가구,인구, 이장, 새마을지도자, 부녀회장, 주요농산물을 정리한 표
마을명 지곡면 덕암리 덕암
가구 89 가구
인구 150 명
이장 박철우
새마을지도자
부녀회장
주요 농특산품 쌀, 사과, 포도, 밤

덕암전경

덕암전경


덕암(덕실) 유래

"유래 : 덕실이라고 부르는 덕암(德岩) 마을은 단일 마을로 십이세기 중엽 추씨가 도점들에 들어와 터를 잡고 황무지를 개간하며 살면서 덕실이라고 하였는데 14세기 초 보성선(宣)씨가 들어와 살았고, 고려말엽에 덕곡이라 고쳐부르게 되었다. 그러다가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시에 안산이 덕암봉이기 때문에 덕암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
뿌리를 내린 성씨는 초계정씨가 일찍이 들어왔고 그 뒤 십사세기 중엽 함안에서 조씨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였고 현재는 풍천노씨와 서산정씨 그리고 하동정씨 등이 모여 살고 있다.
마을 앞에는 교수정이란 정자가 있는데 십사세기 말엽 덕곡 조승숙이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이태조 7년에 정자를 짓고 교수정이라 이름을 붙이고 후생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조선 성종임금은 덕곡의 충절을 가상히 여겨 사제문을 하사했는데 「首陽明月 栗里淸豊 」이란 여덟자의 글귀가 자연암반 위에 비석으로 세워졌다. 특히 덕곡은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에 선생의 굳은 의지와 밝은 도리를 높이 평가하여 자금어대(紫金漁袋)를 하사하여 중국에서도 명성이 알려진 명현이었다. 고려가 망하고 이성계가 등극하자 벼슬을 버리고 동지 72인과 함께 두문동에 들어가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태조 7년에 향리에 돌아와 교수정을 짓고 강의하였다.
벼슬을 버리고 초연히 살아가는 정신을 잇는 미국(薇菊 : 고사리와 국화)이라 적힌 현판이 있어 선생의 충직함과 굳은 절개가 어려있다."

자매결연현황

마산대림하이빌아파트 101동,102동 상세 내용 결연업체(단체)명, 결연일자, 참석인원, 결연대상, 대표자, 전화번호, 사원(회원수), 농특산물 거래현황, 마을방문현황을 정리한 표
결연업체(단체)명 마산대림하이빌아파트 101동,102동
결연일자 20030327

담당
지곡면 총무담당 (☎ 055-960-8710)
최종수정일
2023.10.05 17:4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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