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전면

함양의 전설

의적이 살던 도둑놈골 [탐관오리와 호족들에 대한 분노]

백전면 오천리 내천마을의 북쪽 골짜기로 올라가면 「도둑놈골」이라는 골짜기가 있다.
공인된 지명은 아니지만 재미있는 지명이기도 한 이 골짜기는 옛날에 도둑놈들 '정확히 말하면 의적들'이 둔치고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워지고 있다.


옛날 이 도둑놈골에는 십명 남짓한 의적들이 기거하고 있었다.
벼슬아치들이나 양반들, 그리고 부자들의 등살에 못 이겨 그들 면전을 피하여 산속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뜻을 합하고 힘을 합하여 한 덩어리로 뭉치게 되었다.
이들 도둑들은 죽창이나 칼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이것들은 살육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호신용이었다.

이들 도둑들은 가난하고 약한 이들의 재물을 빼앗는 좀도둑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을 보호하고 도와주는 의적이었다.
그들은 탐관오리들의 관아나 양반들, 부자들의 재물을 약탈하여 자기들이 쓰고 먹는 것 외에는 모두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토속민들은 그들을 미워하거나 밀고하기는 커녕 그들을 도와주고 신앙처럼 받들어 섬기며 보호하였다.

그 의적들의 수령은 용이라는 청년이었다.
그는 안의(당시는 안음현)에서 태어나 살다가 부모와 누이가 하늘을 찌를 듯한 양반의 기세와 탐욕의 희생자가 되었다.
그러자 용은 복수의 일념으로 산에 들어가 무술을 연마하고 동지들을 모아 의적단을 만든 것이었다.

그는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여동생을 뒷바라지 하면서 가난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해 전염병이 온 마을을 휩쓸고 지나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홍수가 나서 손바닥만한 전답마저도 할퀴고 지나갔다.

용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부모님과 여동생을 위해 열심히 숯을 구워 시장에 내다 팔고 품팔이를 하여 기갈을 면해보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모두가 살기 어려운 시대라 숯은 잘 팔리지 않았다.
품을 팔아도 품삯을 제대로 받을 수가 없는 처지라 끼니를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만석꾼이라 불리는 양반집에 쌀을 빌려다가 부모님을 봉양하려 하였다.
그는 쌀을 한 가마니 빌렸으나 다음 해 네 가마니를 갚아야 한다는 약조였다.
좀 더 줄여서 약조를 해달라고 사정을 했으나 불쌍한 양민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당시의 호족들이 들어줄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당장 굶어 죽게 된 가족을 생각할 때 먼저 급한 불을 끄고 보자는 마음뿐이었다.
하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빌려올 수밖에 없었다.

불행하게도 쌀을 갚아야 하는 다음 해에도 계속해서 흉년이 들고 말았다.
쌀을 한 톨도 갚을 수 없게 된 용은 다음 해로 연기해 달라고 손이 닳도록 빌며 읍소하였다.

그러자 그 부자는

“그럼 내년에도 갚지 않는다면 네놈과 네 누이를 우리집 하인으로 삼겠다. 알겠느냐?”

“……….”

참혹한 말이었다. 그러나 약하고 가난한 용은 내년에도 갚을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하고 그 조건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불행은 끝이 없었다.
다음 해에도 또 흉년이 들어 도저히 갚을 수가 없었다.
손바닥만한 논에서 얻은 것이라고는 싸라기 두 말 뿐이었고, 묵정밭을 개간한 밭에서는 서너 되의 콩 뿐이었다.

일이 이 지경이 되자 용이와 시집갈 나이가 다 된 누이는 노랭이 부자의 하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늙은 아버지는 화병으로 죽게 되고 낯을 들고 살 수 없다는 노모마저 자살하여 죽게 되었다.

아! 무심하여라.
통곡을 하고 한탄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참으로 비정한 세상이라고 생각하였다.
용의 마음속에는 불효에 대한 자괴심과 부자에 대한 적개심으로 복수의 불길이 솟아올랐다.

비정한 욕심꾸러기 부자의 탐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하인으로 끌려 온 용이의 누이동생에게까지 음흉한 흑심을 품고 자기의 욕망을 채우는데 제물로 삼았다.
얼마 동안은 이러한 사실을 용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를수록 누이동생의 모습은 초췌해져가고 그녀의 배는 불러 올랐다.
용은 누이를 불러 누구의 짓인가를 물었다.
누이동생은 울면서 주인 영감의 씨라는 것을 실토하였다.

용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누이를 껴안고 통곡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이놈을 그냥 두지 않으리라. 우리 부모님을 죽게 하고 내 누이마저 이런 모양으로 해 놓다니, 반드시 원수를 갚으리라. 너 같은 놈은 하늘이 용서하지 않으리라.'

용이는 어느 날 밤, 정조를 빼앗기고 몸을 망친 누이를 불러냈다.
용은 복수의 칼날을 세우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누이동생이지만 몸을 버리고 신세를 망친 그를 먼저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복수를 하는데 거리낌 없게 하기 위해 사랑하는 누이동생을 죽여 매장하였다.

하늘을 찌르는 슬픔이여! 예리한 복수의 칼날이여! 불타올라라.
이 세상을 쓸어버릴 만큼 뜨겁게 불타거라.
그는 그날 밤 그 집을 뛰쳐나와 산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는 산속에서 나무 열매와 산짐승을 사냥해서 주식으로 삼으면서 날마다 무술을 연마하였다.
죽창 쓰는 법, 칼 쓰는 법, 곤봉 다루는 법 등 무술을 열심히 갈고 닦아서 어느 정도의 경지까지 이르게 되었을 때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젊은이들을 모으기 시작하여 십수명에 이르게 되었다.

그는 이들에게 무술을 가르치고 마음을 수련한 후 약한 상민이나 천민을 괴롭히는 양반, 호족들의 집을 습격하여 재산을 빼앗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빼앗은 재산을 가난하고 약하고 힘없는 이웃들이나 어렵게 살아가는 과부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용의 마음속에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부모와 누이를 농락하고 죽게 한 그 부자 노랭이를 그대로 둘 수 없었다.
그는 의적들을 모두 모아놓고 자신의 내력을 들려주었다.
눈물을 흘리는 의적들도 있었고 당장 그놈을 주살하자는 의적도 있었다.

“아니오. 잘못했다가는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오. 우리가 그 동안 합천, 거창, 함양, 장수 등 이웃 고을을 휘젓고 다녔기 때문에 놈들은 하인과 포졸들을 시켜 경계를 철저히 하고 있소. 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놈의 집은 더욱 철저하게 경계하여 주야로 경비를 선다고 하오.”

“모두 몇 명이나 선다고 합디까? 두령.”

“예닐곱은 된다 하오.”

“허허 두령,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됩니까. 오늘 밤에 당장 몰려가서 해치웁시다. 경비에 괘념치 맙시다.”

“아니오. 신중해야 하오. 잘못했다가는 모든 것이 허탕이오. 자칫 잘못하면 경비를 서는 이들이 피를 보게 될 것이오. 그들 하인들은 우리와 똑 같은 처지가 아니오. 그들에게 추호의 피해도 입혀선 안되오.”

“맞아요. 두령의 높은 뜻이 지당하오.”

“내가 생각하기로는 우리들 중의 누군가가 그 집 하인들에게 접근하여 끈을 연결하여 모의를 함께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소. 또 하나는 그놈의 집 곡간의 쌀을 빼앗고 불을 지르는 것보다 그놈과 그놈 가족들이 기거하는 집 안채에 불을 질러 화장시켜버리는 것이 온당하다 생각하오. 왜냐하면 곡간의 쌀은 하인들이 먹든 누가 먹든 먹을 것이기 때문이오.”

하고 두령인 용은 당찬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렇다면 하인들과 끈을 연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터인 즉, 그 노랭이 부자 일가가 문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협박을 한 후 불을 지르는 게 좋을 듯 하오.”

의적들은 충분히 숙의를 하고 묘책을 짠 후 그 부자놈에 대해 철저한 응징을 하였다.
결국 그 부자 일가는 꼼짝도 못하고 방안에서 불타 죽게되었다.

이렇게 참혹한 응징이 있자 관에서는 의적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각 저자 거리에는 의적들의 초상화가 걸리고 방을 써 붙이는 등 호들갑을 떨었지만 의적들은 껄껄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 초상화들은 그들의 얼굴과는 상관없었고 또 그들의 초상화라 할지라도 주민들이 초상화에 숯검정으로 칠하여 수시로 얼굴이 변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맨숭이 얼굴의 초상에는 누군가가 수염을 달아놓기도 하고 구렛나루가 시커멓게 붙기도 하며 민둥머리에는 투구를 씌워 놓기도 하여 얼굴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주민들이 의적들을 보호하고 돕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일이 이 지경이 되자 포졸들은 의적들을 한 명도 잡을 수가 없었고 많은 재산을 가진 양반들은 자신의 재산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자들도 생겼다.
자기는 구두쇠가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돕는 선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이려고 했던 것이다.

아무튼 이들 의적들은 백전의 내천마을 북쪽의 골짜기에 뭉쳐 살았다고 하여 지금도 그곳을 도둑놈골이라 불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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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과 문화예술담당 (☎ 055-960-4510)
최종수정일
2023.08.10 14: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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