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면

함양의 전설

신효선의 효행 [겨울에 죽순과 대추를 구한 효자]

덕재 신효선은 거창신씨의 후손으로 1506년(연산군12)에 유림면 손곡마을에서 태어났다.
'크게 될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격언이 있다.

신효선은 어려서부터 행동이 민첩하고 번쩍이는 재치, 뛰어난 재질을 엿볼 수 있었으며 어른들을 공경하며 효성이 또한 지극하였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효선의 효행에 대해서 같이 회상해 보고자 한다.
가난하고 살기가 어려운 시대일수록 겨울은 길고 춥다. 더욱 고통스럽고 견디기 어렵다.
병이 나도 치료하기가 어렵고 약을 구하기도 어렵다. 어려움 가운데서 효도를 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차디찬 한겨울의 어느날 효선의 아버님께서 갑자기 병환이 나셨다.
평소에 효성이 지극한 효선은 끼니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아버님의 병환에 대해서는 좋다고 하는 약은 팔방으로 뛰어다니면서 구해 다 드렸다.
좀처럼 아버님의 병환은 차도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님께서는 입맛이 떨어져서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아버님은 죽순나물과 잉어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셨다.
이 말을 들은 효선은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웠다. 겉잡을 수 없는 슬픔으로 몸부림을 쳤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평소에 부모님을 위한 길이라면 무엇이든지 거르지 않고 정성을 다하던 그였지만 추운 엄동설한에 죽순나물과 잉어고기를 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같으면 교통이 편리해서 더운 지방에서 구해올 수도 있고 냉동시설을 하여 겨울에도 갈무리 해 둔 것이 있겠지만 옛날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효선은 뜻대로 할 수 없는 자신의 불효를 원망하면서 식음을 전폐하고 밤낮으로 수심과 슬픔으로 지냈다.
문득 효선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날씨는 몹시 춥지만 몸을 깨끗이 하고 옷을 단정히 차려 입고서는 마을 뒤 대밭으로 가서 정성을 다하여 하느님께 간절히 빌었다.

“병환 중에 계시는 아버님께서 죽순나물을 원하시오니 불효자 효선이는 하느님께 간절히 비나이다. 아버님의 구미를 돋굴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효선이가 꿇어앉아 정성을 다하여 빌기를 하루해가 기울고 저물어 갔다.
그때에 난데 없이 차디찬 회오리 바람이 대밭의 백설을 휙쓸고 지나가더니만 효선의 무릎 앞에 한자 가량이나되는 보들보들한 죽순이 쑥 솟아올랐다고 한다.

그는 집으로 달려와 그 죽순을 삶아서 아버지께서 죽순 나물을 해 드렸다.

“아버님 죽순나물이 여기 있으니 많이 드시고 구미를 돋구어 기력을 회복하십시오. 하느님께서 아버님의 건강을 회복하시라고 이렇게 죽순을 주셨습니다.”
하고 기쁜 마음으로 아버지께서 효성을 다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잉어를 구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다음날 아침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마을 앞 엄천강 두리소로 나갔다.
두리소는 말할 것 없이 추위에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효선은 아버님께 잉어를 구해드리기 위해 한나절동안이나 도끼로 얼음장을 깨고 잉어를 구했으나 불가항력이었다.

그만 기진맥진하여 결국은 얼음짱 위에 쓰러지고 말았다.
몽롱한 기분이 효선을 에워쌌을 때 갑자기 천지를 진동하는 천둥소리가 울리면서 얼음짱이 쩍 갈라졌다.
그러더니 그 얼음판 위로 싱싱한 잉어가 퍼덕이며 뛰어 올라왔다고 한다.

효선은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그 잉어를 들고 단숨에 집으로 달려왔다.
잉어를 쪄서 아버님께 드리며

“아버님 잉어고기 구해왔습니다. 많이 드시고 빨리 건강을 회복하소서.”
하고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 드렸다.

몇 년이 지난 후 아버님께서 이제는 노환으로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돌아가실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늦겨울 이 마을을 지나가던 도인이 효선의 집에 들러 아버님의 병환에 풋대추가 약으로 좋다고 하였다.
효성이 지극한 효선은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깐 늦겨울에 풋대추를 구할 수 없음을 깨닫고 한없는 슬픔에 잠기었다.
만약 풋대추를 구하지 못해서 아버님이 돌아가신다면 이는 천하의 불효자가 아니겠는가! 조상과 후손들에게는 뵈올 면목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괴로운 마음으로 풋대추를 구할 방도를 궁리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가도 풋대추를 구할 수 있는 묘안이 서지 않았다.
효선은 하는 수 없이 마을 앞 공동우물가에 있는 큰 대추나무 아래로 갔다.
효선은 차디찬 겨울밤 추위도 모르고 애끓는 심정으로 마지막 소원을 밤새도록 빌었다.

밤이 새도록 정성을 쏟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날이 새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 찬란한 해가 쑤욱 솟아올랐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렇게 갈망하던 풋대추들이 겨울 대추나무에 수십개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효선의 기쁨은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고마웠다.
무릎이 다 닳도록 하느님께 절을 하고서는 그 풋대추들을 조심스럽게 따서 집으로 달려가서 불을 피우고 약탕에 넣어 달여서 아버님께 드렸다.

그 대추를 달여먹고 아버님의 병환은 점차 호전되어 갔고 집안에서는 전처럼 웃음꽃이 피게 외었다고 한다.


그후 세월이 흘러 효자 효선이도 이미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데 대추나무만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 어느해 마을 앞 시내에 다리를 놓기 위해서 무지한 사람들이 이 대추나무를 베어서 다리를 놓았다.

그런데 그 이듬해 여름에 대홍수가 있었다.
양쪽 언덕에 걸쳐놓는데 불과한 두덕다리가 거센 물결에 견딜 수가 없었다.
모든 다리는 모두 떠내려 갔다.
물론 대추나무 다리도 예외일 수 없이 떠내려 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른 나무는 다 떠내려갔는데 대추나무만은 떠내려가지 않고 마을 앞으로 거슬러 올라오는 기적을 낳았다.
홍수의 물을 구경하러 나온 마을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효선의 지극한 효성이 어려있는 대추나무를 하늘이 알고 떠내려가는 것을 막아주었는데 우리들이 어찌 천대할 수 있으랴! 하고 대추나무가 섰던 본자리에 단을 쌓고 세웠다.
높이가 10미터 가량이고 둘레가 한아름즘 되는 정정한 고목 대추나무가 수백년이 지나도 썩지 않고 지금도 우뚝 서서 효성의 거룩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리고 효선의 지극하고도 갸륵한 효성을 기리는 뜻에서 그 대추나무를 '신효자 대추나무'라고 불러 내려오고 있다.
지금까지도 효선의 지극한 효성은 마을 사람들에게 효도의 귀감이 되어오고 있다고 한다.

사실이건 허구이건 문제가 아니라. 부모님을 섬긴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세상이 타락하고 인륜이 땅에 떨어진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정신을 가르치고 배워서 뜨거운 피를 나눌 수 있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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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문화관광과 문화예술담당 (☎ 055-960-4510)
최종수정일
2023.08.10 14: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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