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천면

함양의 전설

한남의 새우섬 [한남군 이어의 유배지]

조선조 제4대 임금인 세종대왕의 18남4녀중의 열두번째 아들로 태어난 한남군(1429~1457) 이어 의 자는 군옥이요, 그의 어머니는 혜빈 양씨이며 시호는 정도공이다.

천성이 착하고 온순하였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세종대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불행하게도 한남군은 계유정난에 연루되어 함양군 휴천면 한남마을 앞 새우섬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그 곳에서 한 많은 일생을 마쳤다.

계유정난에 연루된 한남군은 사육신과 함께 처형되어야 한다고 신하들의 상소가 빗발쳤으나 형인 세조의 반대로 참형만은 면할 수가 있었다.

한남군은 이곳 함양땅에서 유배생활을 하다가 1459년(세조5년)유배지에서 병을 얻어 한 많은 일생을 마치고 말았는데 이곳 유배 생활에서 하루하루 괴로운 악몽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다.

그의 마음 속에는 항상 불충에 대한 죄책감과 세조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차 있었다고 한다. 원한이 하늘을 사무쳤고 슬픔과 고통 속에서 울부짖으며 나날을 보냈다.
몸은 쇠약할 대로 쇠약해지고 정신적 고통은 참을 수없었다.
그는 마침내 병을 얻어 고통 중에서도 약 한 첩 써 보지 못하고 유배지에서 죽어갔다.

그 후 충정 어린 한남군이 이 곳에서 일생을 마친 유덕을 기리기 위해 동민들이 조그만한 석굴을 만들어 그의 영혼을 위로하는 뜻에서 해마다 위령제를 지내 주었다.

그 뒤 1887년 휴천면의 유림들이 한남군을 추모하는 뜻에서 새우섬에 누대를 지어 한오대라 하였으나 1936년 병자년의 수해로 새우섬이 떠내려가고 한오대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그 때의 유적을 찾을 길이 없게 되었다.

한남군의 유배지인 새우섬은 홍수가 휩쓸어가고 강바닥이 되어 바위와 돌만이 앙상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섬의 흔적은 간 곳 없고 그 섬에 있던 한오대의 복구는 요원한 채 섬 주위 바위에 새겨놓은 한오대란 글자만이 한남군이 살다 간 곳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섬이라고는 할 수 없는 강바닥의 돌더미 뿐이다.
이곳 한남마을에는 가대지라는 곳이 있는데 한남군이 거처하던 집터라고 하며 누구든지 이 곳에 집을 지으면 화를 당한다는 전설이 있다.
무서운 재앙을 당하여 사람이 죽어나 집안이 망한다고 한다.
그래서 누구도 집을 짓지 못하고 밭으로 이용해 내려오고 있을 뿐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한남군이 살다 간 폐허가 된 집터에 남아있는 흔적이라고는 그 당시의 주춧돌뿐이라고 한다.
집터의 주춧돌이 그대로 박혀 있어서 옛날의 슬픈 역사를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또 한가지 한남군과 관련된 것으로 특기 할 만한 것은 단종복위 모의시 군 동원책을 맡았다가 실패로 돌아가자 그 아들과 함께 거열형(사지를 찢어 죽이는 형벌)을 당한 충의공 김문기(金文起)의 영정(높이 120cm, 너비 58cm)이 이 곳 한남 마을에서 발견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마을에는 김문기의 후손이 여러 가구 살고 있는데 한남군 유배당시 한남군을 따라 몰래 이곳으로 들어오면서 가지고 온 것이 아닌가 추측할 수도 있다.

그리고 또 병곡면에는 휴촌(休村)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마을 이름이 한남군과 연관된 이름이다.
이 마을은 한남군이 유배를 오면서 날이 저물어 이곳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쉬었다 하여 쉰터 즉 휴촌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한남군의 묘는 함양읍 교산리 속칭 한남골 널찍한 묘소에서 동자석과 문인석이 수호하는 가운데 상림 숲을 바라보며 오늘도 충신들의 갸륵한 충절을 위로하며 미소를 짓고 있으며 97년 경상남도 기념물 제165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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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과 문화예술담당 (☎ 055-960-4510)
최종수정일
2023.08.10 14: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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