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천면

함양의 전설

창암산 오씨네 [장군대좌설 단지스님이 이른 명당]

지리산 기슭에 높이 923미터의 창암산이 마천면 강청마을 뒷산으로 우뚝 솟아 있다.
정상에는 비녀바위가 있고 그 아래에 상투바위가 있다.
그 두 바위 사이에 나주 오씨 오낭원의 무덤이 있는데 그 곳이 장군대좌설의 명당이라 전해지고 있다.
이 명당의 무덤 자리가 잡히기까지의 전설이 전해오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마천면 도촌마을에 살던 오낭원은 동네에서 인심이 좋기로 이름나고 덕망이 높은 사람으로 모두가 존경하였다.
가산이 넉넉하여 잘 살았기 때문에 그의 큰 사랑방에는 손님이 끊일 날이 없었고 어떤 사람은 3년, 또 어떤 사람은 5년까지 그냥 눌러붙어 식객이 되어 살다가 떠난 일도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런 부류의 나그네 가운데 한 사람이 3년간이나 묵고 있다가 가면서도 아무 인사말 한 마디 없이 무례히 떠나게 되자 성품이 좀 갈갈한 오씨의 맏아들인 오상윤이 그 식객에게 어째 3년이나 공짜로 우리 집에서 기숙을 하고 떠나면서도 우리 아버님께 감사하다는 말씀 한 마디도 없이 그냥 떠날 수가 있느냐고 그 무례함을 꾸짖듯이 말했다. 그 나그네는

“그럼 내가 그 어른의 묏자리나 하나 잡아드릴까?”

하더니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창암산 상투바위 위쪽에 묘를 쓰라는 내용으로 말하고 휭하니 떠나갔다는 것이다.

오씨 집안에서는 그 사람이 왼쪽 손의 둘째 손가락이 하나 잘려 없으므로 그 나그네의 신분이 스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단지(斷指)스님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어느 해 가을 오낭원이 세상을 떠나자 자연히 무덤을 나그네가 말한 대로 창암산 상투바위 위쪽에 쓸 수밖에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약200년 전의 일이므로 영. 정조시대쯤으로 추정되는데 그 때의 창암산 산길은 숲이 우거지고 험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덕망이 높고 존경 받는 오낭원의 장례식이기에 도촌마을과 강청마을의 장정들이 자진하여 상여를 메고 그 높고 험한 산비탈을 올라가 산꼭대기 비녀바위 아래 상투바위까지 무사히 운구한 것이다.

그런데 단지스님이 지시한 바에 의하면 하관의 시간이 오후3시로 지정되어 있었고 또 조건이 그 때 쇠우산을 쓰고 가는 사람을 볼때 하관식을 가지라 한 것이다.
하늘이 드높고 짙푸른 가을 날씨인데 어떻게 비가내릴 수 있으며 또 삿갓을 쓰고 가는 사람이 있겠는가 설사 비가 온다고 할 지라도 누가 쇠우산을 쓰고 지나갈 것인가.
참으로 난감하고 희한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쩌면 불가능한 일로 실현성이 없는 헛된 일로 끝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참으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렇게 맑고 푸르던 가을 하늘의 한쪽에 갑자기 검은 구름이 일기 시작하더니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때 어떤 삼사십대쯤의 여인 하나가 솥뚜껑을 거꾸로 받치고 지나가는 게 아닌가! 아, 이 때다 하고 오씨네 상가에서는 경건하게 유교식 하관을 한 것이다.

이 무덤터는 장군이 나올 명당이기는 하나 헛점이 있다고 했다.
상투바위가 비녀바위 아래 있으므로 과부가 많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남편 잃은 과부들이 괭이로 무덤을 파러 올테니 하얀 회를 많이 섞어서 무덤을 튼튼히 만들어야 한다는 단지스님의 주의가 있었다.

그래서 시키는 대로 무덤에 회를 많이 섞어 봉분도 크게 만들었으면 아주 견고하게 흙을 다져 누구도 감히 손을 못 개개 만든 것이다.
무덤은 정방(丁方)을 등진 좌향(坐向)으로 쓴 것이다.
창암산 앞에 철마가 다니는 길이 뚫리면 장군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마천은 지리산 천왕봉이 가장 가까운 산악지대인지라 철마의 길이 뚫리기는 참으로 요원한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1970년을 전후하여 마천에서 휴천을 거쳐 유림과 수동으로 이어지는 찻길이 난 것이다. 워낙 길이 험하여 버스가 다니기에는 위험이 많이 따르는 것이다.

마천과 휴천의 경계지점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놀았다는 용유담이 있고 마적도사의 전설도 서린 용유담은 관광지로 알려져있다.
이 길은 버스가 다니고 있다. 버스를 철마로 생각할 수 있다.

또 산청. 진주로 이어지므로 마땅히 진주의 기차가 마천을 거쳐 지리산 관광객의 편의를 도모하고 남원으로 이어지면 영호남을 잇는 멋진 관광 철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천은 경남 땅이면서 전북 남원군의 인월면, 산내면의 땅을 거쳐서 차로 들어올 수 있게 되어 있다.
지금도 주요 차량의 교통로는 인월과 산내를 거쳐 마천 백무동에 이르게 된다.

함양에서 남원땅의 한쪽을 거쳐 지리산 국립공원의 무릉도원을 관람하게 된다.

지리산 천왕봉의 힘찬 산맥이 마천으로 내리뻗어 우뚝 솟은 산이 바로 마천의 사랑을 받는 창암산이요. 벽송사 절이 들어있다.

이 자랑스런 창암산에 오씨네 명당이 있고 또 어디엔가 노씨네 명당이 있으며 그 밖에 창원의 당산터와 금대산의 금대사에 있는 우물터등이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또 한군데 있으나 아직 누구도 찾지 못하고 있다.

금대사 우물터 위에는 부러진 은행나무가 있는데 한 스님이 하동에서 벽소령 재를 넘다가 자기가 묻히고자 하는 명당이 이미 금대사 절이 서 있어 홧김에 큰 돌을 하나 집어던진 것이 금대사 절의 은행나무가 맞아 부러졌다는 전설이 있다.
고려시대부터 전해오는 풍수지리설에 의한 전설이다.

단지스님의 말에 따르면 창암산 나주 오씨네 그 명당은 오낭원의 7대 손에서 장군대좌가 나오게 되어있다.
그러나 오낭원의 9대손까지 나왔으나 아직 별을 단 장군은 나오지 않았다.

7대손 가운데 문학박사로 시인이 한 사람 배출 되었으며 은행원, 회사의 간부, 등등 직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은 있다.

현재까지는 육.해.공군 사관학교에 들어간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장군대좌설의 무덤 덕으로 장군이 나올 가능성은 없다.

철마가 다니는 철길이 놓인다 해도 현재로서는 장군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늘날 과학시대에 자고로 전해오는 풍수설은 한낱 허구임을 알수 있다.

어느 땅이건 금수강산 우리의 땅은 다 좋은 곳이다. 다 명당이다.

오씨네 창암산 명당의 묏바람은 더 긴 세월이 흐르면 장군이 탄생하리라 믿어진다. 그러나 그러한 가능성은 장군대좌가 아닌 다른 집안에서도 나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멋진 철마가 아름다운 마천골에 기적을 울리며 달릴 그날도 관광지인 이곳에 올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그것은 다 풍수설을 이루기 위한 것은 아니고 시대적인 욕구에 의한 것일뿐이다.

이제 우리는 망국적인 명당이야기는 잊어버려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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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문화관광과 문화예술담당 (☎ 055-960-4510)
최종수정일
2023.09.18 11: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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