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읍

함양의 전설

효자 삼형제 [삼천마을의 세 개의 우물]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있다. 효성이 지극하면 여러 가지 기적이 일어난다는 내용의 이야기가 많이 있다. 이 이야기도 효자 삼형제에 대한 이야기다.

함양의 소재지에서 동북쪽으로 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신천리의 삼천(三泉)마을은 가뭄에 우물이 세 개씩이나 생겼다고 하여 삼천이라고 하고 또 마을 뒤에 있는 백암산의 산혈이 마을로 뻗은 형세가 매화가지같다 하여 매지곡(梅枝谷)이라고도 부른다.

삼천이란 마을 이름이 생기게 된 것은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가운데 효자들의 죽음으로 인해 우물이 생겼다는 데서 비롯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에 마음이 착한 삼형제가 정성을 다해 홀어머니를 봉양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어머니 봉양을 위해서 삼형제는 주야로 번갈아 정성을 쏟고 있었다.

그 때 나라 전체가 4년간이나 혹독한 가뭄을 당하여 식량은 말할 것도 없고 식수조차 고갈되어 구할 수가 없었다.
이 가뭄으로 인해 굶어죽는 사람이 부지기수로 발생하였다.
들리는 소문에는 배가 고파서 사람이 사람을 잡아서 사람고기를 먹는다는 흉흉한 이야기도 들려오고 있었다.

이 마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뭄으로 인해 농토는 황폐해졌으며 식량만이 아니라 식수까지 고갈되었고 설상가상으로 돌림병까지 돌아 사람들은 마을을 등지고 하나 둘 떠나는 이들도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어려움은 효자 삼형제의 집에도 마찬가지였다.
형제들은 산속을 헤메어 구해온 초근목피로 홀어머니를 간신히 봉양하고 있었다. 삼형제의 어머니라고 해서 잘 먹고 살 수는 없었다.

아무리 극진히 봉양해도 영양실조뿐 아니라 병환까지 얻어 삼형제는 서로 의논하여 큰 아들부터 어머니의 영양보충과 기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식량을 구하러 집을 떠나기로 의논하였다.

그러나 워낙 나라 전체가 가뭄과 흉년이 심해 식량을 구하기란 바다속에서 진주를 찾는 것처럼 어려웠다.
큰아들은 밤낮으로 먹을 것을 찾아 헤매다가 식량도 구하지 못하고 자신이 허기져서 그만 쓰러져 죽고 말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여러날이 지나도 형님이 돌아오지 않자 이번에는 둘째가 집을 떠났다.
'형님은 식량을 구하지 못했지만 나는 꼭 구해야만 어머니를 봉양할텐데'
하는 근심스러운 마음으로 나섰다.

그러나 둘째 역시 먹을 것을 찾아 헤멨지만 허탕치고 말았다. 그도 역시 배가 고프고 기력이 소진하여 어머니 봉양은 커녕 자신이 쓰러져 죽고 말았다.

큰 형님에 이어 둘째 형님조차 집에 돌아오지 않자 막내는 형님들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가 한 골짜기에서 큰 형님의 주검을 발견하였다. 참으로 슬프고 원통한 일이었다.

막내는 슬픔에 겨워하면서도 큰 형님을 어머니 몰래 집 뒤편에 묻고 둘째 형님을 찾아나섰다.
며칠을 찾아 헤매다가 바위 밑에서 둘째 형님의 주검을 발견하였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 앞이 캄캄하였다.
가슴이 터지는 아픔이었지만 슬픔을 참고 둘째 형님마저 마을 뒤에 안장을 했다.
형님들의 죽음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었지만 하나밖에 없는 홀어머니를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

막내는 이 모든 것을 참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어머니를 봉양하며 지내야 했다. 세사람이 노력해도 어머니를 배불리 봉양하지 못했는데 혼자서는 더욱 벅찬 일이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는 막내를 불렀다.

“얘야, 다른 음식은 먹지 못해도 좋으니 물이라도 실컷 마시고 싶구나.‘

막내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물을 구하기 위해 우물가로 갔다.
그러나 우물은 고갈되어 물이 없고 자갈만 득실거렸다.
가뭄이 너무 심했던 것이다.

막내는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식량은 커녕 물 한바가지를 구하지 못해 그 죄책감으로 형님들의 무덤가에서 통곡하며 울었다.
울다가 울다가 빈바가지만 들고 괴로운 마음으로 돌아오다가 그도 그만 쓰러져서 영영 일어서지 못하고 말았다. 그는 형님들처럼 길에서 죽고 만 것이다.

그런데 막내가 울며 쓰러진 그 자리에 샘물이 솟아올랐다.
이어 형님들의 무덤 근처에서도 샘이 솟아 흘렀다.
메마른 가뭄에 샘이 세 개씩이나 한꺼번에 생겨서 마을 사람들은 갈증을 풀고 활기를 얻었다.

마을의 효성스러운 삼형제로 인하여 샘물이 솟아오른다는 소문이 사방으로 전해지자 마을을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하였고 세 개의 샘에서 나오는 물로 식수뿐만 아니라 농업용수로도 사용이 되어 이후부터는 이 마을이 번성하였다고 한다.

이리하여 샘이 셋씩이나 솟은 동네라 하여 삼천(三泉)마을이라 하였고 지금은 세 개의 우물 중에 두개만 남아있다.

삼형제의 효성이 지금도 우물에 얽혀 있어 마을 노인들은 손자들에게 모깃불 대신에 전기불을 켜놓고 꿈많은 그들에게 전설을 들려주고 있다.

이 우물로 인해서 경로효친의 사상을 고취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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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문화관광과 문화예술담당 (☎ 055-960-4510)
최종수정일
2023.09.18 11:2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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