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

함양의 전설

월명총 이야기 [행상과 역녀의 사랑]

함양의 관문인 수동 삼거리에서 함양읍으로 들어오는 다리를 건너면 왼편 산밑에 몇 채의 가옥들이 붙어 있는 마을이 보인다.
이곳은 행정 구역상으로는 함양읍 백천리에 속해 있다.
이 마을이 월명 부락으로서 그 이름이 월명총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월명총에 얽힌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옛날의 이곳은 사근(水東)은 역마가 있었던 역촌으로서 지금의 화산리에 사근역이라는 역이 있었다. 이 역은 진주, 마산 등 남부지역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도중 말을 바꿔타고 가는 곳이었다.

이곳 사근역에 월명이라는 이름을 가진 역녀가 있었다. '역녀'란 옛날 역에 소속되어 역일을 돕는 여자로 신분이 낮은 여자였다.

그런데 이곳 역촌에 경주 사람이라는 총각이 있었는데 행상을 하면서 머물러 살고 있었는데 키가 크고 얼굴도 잘 생겼으며 마음씨가 아름답고 성격이 부드러워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얻어 칭찬과 호평을 받아오던 젊은이였다.

본래 고향은 경주였지만 고향에 대한 생각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자기가 하는 일에만 늘 충실하였고 이웃간에도 허물없이 지냈다.
그는 이웃에 살고 있는 역녀 월명이라는 처녀와도 자주 만나게 되어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

자주 만나면 정이 들고 남녀간의 따뜻한 정은 곧 사랑으로 바뀌게 마련이다.
어느듯 이 두사람의 사이는 사모의 정이 두터워지고 사랑의 불꽃으로 뒤덮이게 되었다.

고향의 부모님이나 형제자매들간에도 따뜻한 사랑을 느껴보지 못한 총각에게는 월명의 인정 어린 따뜻한 손길이 더 없이 고마웠으리라.

월명 역시 총각이 믿음직스러웠고 천한 자기에게도 따뜻한 인간 대접을 해 주는데 고마움을 느꼇다.
어려운 가운데 행상을 해 나가며 열심히 살아가는 갸륵한 마음에 마음이 끌렸다. 외로운 총각에게 동정이 갔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제 두 사람의 끊임없는 사랑의 불길은 용광로처럼 뜨겁게 달아 오르기 시작했다.
총각은 월명만 있으면 이 세상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수가 있을 것만 같았다.

두 사람은 이웃의 권고로 간단한 절차를 밟아 신혼 살림을 차리고 꿈에도 그리던 포근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꿈같은 신혼생활에서 행복을 느꼈다.
아기자기하고 알뜰한 살림으로 누구나가 부러워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평화롭고 복된 생활이 일생 동안 계속되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어느 시대 어떠한 사람이라도 행복하고 즐거운 생활만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평화로운 가정에 뜻밖에 날아든 비보가 있었다.
고향에 계신 남편의 어머님이 위독하다는 기별이 있었다.
경주인은 가족을 데리고 떠나기에는 거리가 너무나 멀었고 또한 사정이 급박하여 아내 월명을 남겨두고 혼자 떠나야만 했다.

그런데 곧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간 남편은 돌아오지 않고 소식도 없어 월명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날이 갈수록 남편이 기다려진다.
하루가 여삼추로 한달이 지나갔다. 불안하고 불길한 악몽에 사로잡힌 월명은 천리나 되는 먼 길을 찾아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며칠만 더 기다려 보자고 스스로 제 마음을 위로했지만 월명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몸져 눕게 되었다.
이제 먹는 것조차 싫어졌고 물도 먹을 수가 없었다.
몸은 쇠약할 대로 말라갔고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헛소리만 하였다.

주위 사람들도 걱정을 하며 돌보았지만 남편을 기다리다가 생긴 병은 아무런 약도 효과가 없이 날로 더해졌다.
지금 당장 남편이 와 준다면 일어나련마는 사랑하는 남편의 품속을 애타게 기다리며 허공을 헤매었다.
남편을 부르짖으며 기다리던 산울림마저도 되돌아오지 않아 허탈한 마음 금할 수가 없었다.

월명은 끝내 남편이 돌아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남편의 이름을 부르면서 애처롭게 죽어 갔다.
이웃 사람들도 월명이 애처롭게 죽어가는 것을 안타까워 하였다.

한편, 경주로 간 남편은 어머님의 병환이 완쾌되기를 애타게 기다렸지만 극진한 간호에도 아랑곳 없이 어머님은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남편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지만 더 큰 안타까움은 지금 곧 월명에게 달려갈 수 없는 자신의 처지였다. 먼 길을 온 여독과 병간호에 지쳐서 자신도 몸져 눕고 말았다.

사랑하는 아내를 보고싶은 마음에 온갖 힘을 다하여 겨우 몸을 부지하고 일어나 먼 길을 떠나야 했다.
온갖 고생 끝에 아내의 곁에 왔지만 이미 아내는 이 세상을 떠난지 오래였다.

아내의 무덤은 경주인의 고향인 경주를 바라볼 수 있는 사근 삼거리 맞은편 산중턱에 묻어두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월명의 죽은 고혼이라도 멀리 경주를 바라보며 남편을 그리워하라고 하였다.

집에 돌아온 경주인의 마음은 아내의 죽음으로 허탈하였다.
하늘이 꺼지는 듯한 슬픔과 절망 가운데서 극도로 쇠약해진 남편이였다.
그는 월명의 무덤에서 떠날 줄 몰랐고 끝내 자신도 월명의 무덤곁에서 죽음의 길을 택하고 말았다.
이웃 사람들은 월명과 그의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고 넋을 위로하기 위해 경주인의 무덤을 월명과 나란히 만들어 주었다.

사랑하는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가 숨져 간 월명의 무덤을 후세 사람들의 입으로 월명총이라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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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과 문화예술담당 (☎ 055-960-4510)
최종수정일
2023.08.17 13: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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