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

함양의 전설

나무에 걸어놓은 갓 [갓걸이 마을의 유래]

고을마다 고사에 얽힌 이야기나 지명에 얽힌 이야기가 많이 있다.
또 고사에 근거해서 정해진 지명이나 사건도 많이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러한 역사의 변두리에 많은 이야기들이 생겨나게 되고 또 그러한 이야기들이 전설로 전해지게 된다.
함양지방은 삼국시대의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요, 소백산맥을 넘는 관문이기 때문에 이러한 이야기들이 더욱 많다고 하겠다.

여기에 소개하는(갓걸이)라는 지명은 함양읍 소재지에서 약 3km 떨어진 천령봉 아래, 남원으로 넘어가는 국도변에 위치한 난평리 관동마을의 속칭이다.

그러니까 관동마을이 생기기전의 일이었다.
이 마을의 동남쪽 약 1km 지점에 위치한 새터마을 뒤에는 선붓재라는 재가 있다.

어느 날 이 재를 넘어가는 유명한 도인이 있었다.
일정한 거처가 없이 전국을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도인이었는데 땀을 뻘뻘 흘리며 경사진 이 선붓재를 올라오느라 몸이 피곤하여 고개의 정상에서 잠시 숨을 돌리며 땀을 딲고 있었다.

바위에 걸터앉아 쉬고 있던 도인은 산 아래 펼쳐진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멀리 바라보이는 함양분지는 사람이 살만한 곳이요, 유순하고 덕망있는 인물이 많이 나올 곳이라고 생각했다.

주변의 산세와 지세를 다시 한번 훓어보고서는 이 재의 서북쪽에 위치한 천령봉 아래로 눈길이 끌렸다.
그가 바라보는 곳에 마을이 생기게 되면 그 마을 사람들은 착하고 부지런하여 분명 등 따습고 배부르며 살기 좋은 마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따사로운 봄은 아직도 멀었지만 아늑하고 양지바른 이곳은 훈훈한 봄의 향기가 벌써 풍기고 있구나.” 하고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때로부터 무심한 세월은 흐르고 또 흘렀다.
오랜 세월이 흐른뒤 도인이 말하던 그 곳 천령봉 아래에는 하나, 둘 인가가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일대에 여기저기 흩어져 살았다.

허허로운 언덕에 띄엄띄엄 흩어져 살던 사람들은 함께 마을을 이루어 서로 정을 나누며 아기자기 모여 살기를 원하였다.
이리하여 주민들은 학식과 덕망을 지니고 풍수지리에 밝은 고을 어른들을 찾아가 마을 터를 잡아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들 역시 이 지역 난들 주변의 지세와 산세가 좋다고만 말할뿐 어느 곳이 마을 터로 좋을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다.
누구도 적극적으로 나서 마을 터를 잡아주려는 사람이 없어 주민들 모두가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마을터를 물색하고 있을 때 마침 이 곳을 지나가던 선비가 하나 있었다.

그 선비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궁금하게 여기어 그곳으로 가 보았다.

“이렇게 바쁜 계절에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 일들은 안하시고 무슨일로 모여 있습니까?”

하고 그 선비는 불어보았다.

“우리는 살기좋은 이곳에 마을터를 찾고자 벌써 몇 달째 헤매었습니다마는 모두가 다 좋은 터라 어디에다 정하는 것이 가장 좋을지 몰라서 서로 상의하고 있는 중이오.”

“그럼 내가 풍수지리에 관해서 조금 들은 바가 있으니 허락만 하신다면 나름대로 천거해 보리다.”

이에 여지껏 마을터를 잡지 못한 주민들은 선비의 말에 대 환영이었다.
이 선비라면 좋은 터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선비에게 마을터를 잡아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 선비는 높은 언덕에 올라 이리저리 사방을 둘러보더니

“과연 이곳은 어디나 터가 좋다보니 감히 적당한 장소를 정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겠소.”

하였다.

선비는 이곳 저곳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살피기 시작하였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땀을 씻으며 선비는 쓰고 있던 갓을 벗어 나무에 걸어 놓고 하늘과 땅, 동서남북의 방향을 잡아보고는

“옳다. 이곳이다.”

하며 손바닥을 쳤다.
그는 기쁨을 참지 못하여 큰 소리로 주민들을 향하여 외쳤다.

“여러분 바로 이곳이 여러분이 살곳이요.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햇볕을 종일 받을 수 있으며 시원한 바람이 잘 통하여 질병이 없을것이오. 또한 뒤로는 병풍처럼 큰 산이 둘러 감싸주고 앞으로는 기름진 옥토가 널려있으니 바로 이곳이 하느님이 여러분께 마련해 주신 가장 적합한 복지(福祉)입니다.”

주민들은 그의 설명하는 말을 듣고 이에 찬동하여 크게 기뻐하며 음식을 장만하여 큰 잔치를 베풀었다.
그리고 그 선비에게 극진한 대접을 하며 같이 살자고 권유하였다.

그리하여 사방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은 선비가 정해준 마을터에 하나,둘 모여 살게 되었고 그 선비 역시 순후하고 어진마을 사람들과 아늑하고 수려한 이곳 경관에 반해 오래도록 같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마을 터전을 잡을 때에 수고를 아끼지 않고 마을 사람들을 위해 봉사한 그 선비가 땀을 닦으며 쓰고 있던 갓을 벗어 마을 입구 나무에 걸어놓았다 하여 이곳을“갓걸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우리의 지명이나 인명이 한자말로 바뀌면서 이 마을의 이름도 한자어로 입괘동이라고 불렀다한다.
조선 말기에 와서 다시 마을 이름을 지금의 이름인 관동(冠洞)으로 부르게 되었다.

“갓걸이”는 순수한 우리말로서 지금도 사람들에게 많이 불리워지고 있다. 입(笠)과 관(冠)의 한자말 뜻이 갓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기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부드럽고 아름다운“갓걸이”라고 순 우리말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목록
으로

담당
문화관광과 문화예술담당 (☎ 055-960-4510)
최종수정일
2023.08.17 13:10:56
만족도 조사

현재 열람하신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십니까?

평가

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