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 (崔致遠) |
- 857~925 ?
- 호는 고운이며 시호는 문창후이다 신라 최고의 문장가요 우리나라 한문학의 원조이고 동방 18현인중의 한사람이다. 경주 사량부에서 태어나 12세때 당나라에 유학하여 18세에 과거에 급제했다 관리로 종사하면서 황제의 자금어대를 하사 받았고 황소의 난때 「토 황소격문」의 글을 써서 내란을 수습하여 공의 문장은 중국에서도 명성이 드높았다. 28세에 귀국하였으나 문란한 국정에 통탄하며 외직을 자청하여 태인, 정읍, 서산을 거쳐 천령(함양)태수로 부임하여 대관림(상림)을 조성하고 풍수해를 막아 이 고장 발전에 기여했고 덕으로써 풍속을 교화하여 후세인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저서로는 계원필경, 사육집, 사산비명, 법장화상전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