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응택, 임채동 유족 구술
- 작성일
- 2025-08-19 16:09:13
- 조회수 :
-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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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응택, 임채동 유족 구술
임응택 유족 구술
나 그때 여덟살 아홉 살쯤 됐어요.
나는 같이 살고 있던 삼촌을 잃었는데. 나는 그건 알아, 칠월 스물 닷새날. 그날 비가 왔어. 그 사람들 왔을 때 앞날 두 명을 먼저 잡아갔어. 사단이 날상 싶으니까 태구인가 그 양반은 새벽에 먼당까지 올라 도망갔어. 사건이 날 줄 알았거든. 우리보다 나이 많은 사람은 알것지.
전날 비가 왔고 나는 서당에 있을 때 지서에서 올라오라고 했어. 아침에 치라골 사람 18명이 한날 한시에 잡혀갔어요.
그 중에 한명만 살아서 나오고...
그날 아침에 삼촌은 담배밭에 담배잎 따다가 잡혀갔어. 삼촌은 결혼은 하셨는데 자녀는 없었어요. 젊은 사람만 그리 됐응께 혼인신고 안한 사람도 많았어. 얼추 결혼은 다 하긴 했어도 애 없는 사람도 있었지.
18명이 끌려갔는데 그 중에 한 명이 살아왔지. 임기택씨는 살아왔거든. 그날 동네사람들을 잡아다가 몽둥이로 패고 소리를 지르고 했어요. 미리 겁이 나서 도망간 사람은 살았지.
좌익편 들었다고 뒤집어 씌워가지고.
시신은 수습 못 했어. 몇 십년 있다가 도북사람들이 먼저 발굴해 왔는데 우리는 못했어.
치라골 사람들 이야기가 다 똑같아요. 한날 한시 일어난 일이라서.
아버지 형제가 둘이었는데 삼촌은 돌아가시고 아버지만 남게 됐어. 부인은 그 당시 남편이 없기 때문에 그 이듬해 설엔가 개가를 한기라.
마을 사람들 끌려갈 때 아무 영문도 몰랐어. 사상범으로 몰려서 간거지. 산골짜기 산다고 빨갱이라고. 전부 그리 인정하고 끌려갔지. 경찰에게 끌려갔어.
빨갱이들이 안내려올 수 있는가. 빨갱이들이 내려왔지, 식기봉에서 내려왔지.
여기가 안의 황석산으로 해서, 식기봉으로 해서 지리산 가는 길목이야. 지리산에서 빨갱이들이 지나다니면서 밥해내라 하면 밥해줘. 그 사람들 시키는대로 안하면 안돼. 아무나 와도 무서워서 뭐, 안해주면 되나.
죄가 없어도 빨갱이라 하면 말 한마디 못하는 기라. 밥해 줬다고 죄가 되나 죄가 없지.
임채동 유족 구술
나는 그때 만 다섯 살 먹었어요.
새벽일찍 데리고 갔다. 치라골에서는 18명이 끌려갔는데 그 중 한 명 임기택씨가 살아나왔다. 젖 얻어먹은 인연으로 살아나오고 나머지는 한 날 한시에 잡혀가서 죽었다.
나는 만 다섯 살이라, 여섯 살 되던해다. 다른 기억은 없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없다. 얼굴도 모르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얼굴도 똑띡이 모르는데.
어머니도 조금 있다가 개가해 가버렸다. 앞도 안 보이는 할머니랑 살았어. 할아버지가 외동아들인데 일찍 돌아가시고 할머니랑 둘이 살았어. 나 산거는 말도 못해. 넘에 집에 살고 넘에 집에 일해주고 먹고 살았지. 밭때기가 하나있나, 재산도 없고.
지금 같으면 정부에서 먹여살려주니 괜찮지. 계속 치라골에서만 살았지. 배운 것도 없는데 어딜 나가 살것소. 초등학교 문 앞에도 못 갔는데 오데 가서 살것소.
할머니랑은 한 십년 살았어, 한 십년 같이 살았어. 그러다 돌아가셨어. 15살에는 완전히 혼자였지. 그때는 넘에 일 조금 해주고 하루 점두록 일해야 보리쌀 한줌밖에 안줘. 그리 묵고 살았어. 그러니 학교도 못 다녔지.
누가 도와준 사람도 없었어. 그 당시 집안 몇 있어도 다 못사니까 나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열 살 먹어서부터 남에 일하기 시작한기라. 남에 논이나 밭에서, 촌에서 그것밖에 더 있소. 어리니까 꼴이나 베다주고 밥이나 얻어먹고. 품삯 받아봐야 보리쌀 1킬로도 안줘 보리쌀을. 입 먹고 살라고 일한기라. 나 산거는 말 못해.
아버지가 계셨으면 달랐지. 지금 같으면 할머니는 눈도 못 보지, 아무것도 없어서 영세민이라도 돼서 정부에서 나오지. 그때는 정부도 못사니 십원짜리 하나 못 주는거라. 밀가루라도 나왔겠지. 공출로 뺏어 가기나 하지. 지금 세상 같으면 그리 고생 안하지. 영세민, 그때는 그런 거 없었지.
너무 외롭게 자랐지, 나 산거는 얘기도 못 한당께. 책을 쓰면 짊어지지도 못한다 안하요, 내 산거 이야기 하면.
그때는 빨갱이 시키는 대로 안하면 살지도 못하는 세상이었어. 총을 들이밀면 밥 안 해주고 돼요? 내가 밥 안해주면 내가 총에 맞아 죽을 판인데 밥을 안 해줄 수 있나.
그때만 해도 길이 어디 있소. 수동에서 걸어오고 그랬는데 좁짝한 길을 걸어 다녔지. 여기 길이 오데 있어. 차도 안다녔어. 여기는 거창 넘어오는 길도 없었어, 소릿길만 있지. 신작로가 어디 있소. 저녁으로 빨갱이들이 이 길을 걸어 다닌거라.
치라골 여기도 당그래산에 한번 갔어. 우리끼리 묘를 쓴다고 갔어. 남자들 여남은 명이 발굴하러 갔는데 개발해서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기라. 부지를 몰라. 한 이십년 됐을 때 갔어, 근데 못 찾았어. 아무것도 안 나오더라. 얄궂이 신발짝 하나 나오더라. 발굴을 못했지 어디 구덩이인지 확실히 아는 사람도 없고.
임응택 유족 구술
나 그때 여덟살 아홉 살쯤 됐어요.
나는 같이 살고 있던 삼촌을 잃었는데. 나는 그건 알아, 칠월 스물 닷새날. 그날 비가 왔어. 그 사람들 왔을 때 앞날 두 명을 먼저 잡아갔어. 사단이 날상 싶으니까 태구인가 그 양반은 새벽에 먼당까지 올라 도망갔어. 사건이 날 줄 알았거든. 우리보다 나이 많은 사람은 알것지.
전날 비가 왔고 나는 서당에 있을 때 지서에서 올라오라고 했어. 아침에 치라골 사람 18명이 한날 한시에 잡혀갔어요.
그 중에 한명만 살아서 나오고...
그날 아침에 삼촌은 담배밭에 담배잎 따다가 잡혀갔어. 삼촌은 결혼은 하셨는데 자녀는 없었어요. 젊은 사람만 그리 됐응께 혼인신고 안한 사람도 많았어. 얼추 결혼은 다 하긴 했어도 애 없는 사람도 있었지.
18명이 끌려갔는데 그 중에 한 명이 살아왔지. 임기택씨는 살아왔거든. 그날 동네사람들을 잡아다가 몽둥이로 패고 소리를 지르고 했어요. 미리 겁이 나서 도망간 사람은 살았지.
좌익편 들었다고 뒤집어 씌워가지고.
시신은 수습 못 했어. 몇 십년 있다가 도북사람들이 먼저 발굴해 왔는데 우리는 못했어.
치라골 사람들 이야기가 다 똑같아요. 한날 한시 일어난 일이라서.
아버지 형제가 둘이었는데 삼촌은 돌아가시고 아버지만 남게 됐어. 부인은 그 당시 남편이 없기 때문에 그 이듬해 설엔가 개가를 한기라.
마을 사람들 끌려갈 때 아무 영문도 몰랐어. 사상범으로 몰려서 간거지. 산골짜기 산다고 빨갱이라고. 전부 그리 인정하고 끌려갔지. 경찰에게 끌려갔어.
빨갱이들이 안내려올 수 있는가. 빨갱이들이 내려왔지, 식기봉에서 내려왔지.
여기가 안의 황석산으로 해서, 식기봉으로 해서 지리산 가는 길목이야. 지리산에서 빨갱이들이 지나다니면서 밥해내라 하면 밥해줘. 그 사람들 시키는대로 안하면 안돼. 아무나 와도 무서워서 뭐, 안해주면 되나.
죄가 없어도 빨갱이라 하면 말 한마디 못하는 기라. 밥해 줬다고 죄가 되나 죄가 없지.
임채동 유족 구술
나는 그때 만 다섯 살 먹었어요.
새벽일찍 데리고 갔다. 치라골에서는 18명이 끌려갔는데 그 중 한 명 임기택씨가 살아나왔다. 젖 얻어먹은 인연으로 살아나오고 나머지는 한 날 한시에 잡혀가서 죽었다.
나는 만 다섯 살이라, 여섯 살 되던해다. 다른 기억은 없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없다. 얼굴도 모르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얼굴도 똑띡이 모르는데.
어머니도 조금 있다가 개가해 가버렸다. 앞도 안 보이는 할머니랑 살았어. 할아버지가 외동아들인데 일찍 돌아가시고 할머니랑 둘이 살았어. 나 산거는 말도 못해. 넘에 집에 살고 넘에 집에 일해주고 먹고 살았지. 밭때기가 하나있나, 재산도 없고.
지금 같으면 정부에서 먹여살려주니 괜찮지. 계속 치라골에서만 살았지. 배운 것도 없는데 어딜 나가 살것소. 초등학교 문 앞에도 못 갔는데 오데 가서 살것소.
할머니랑은 한 십년 살았어, 한 십년 같이 살았어. 그러다 돌아가셨어. 15살에는 완전히 혼자였지. 그때는 넘에 일 조금 해주고 하루 점두록 일해야 보리쌀 한줌밖에 안줘. 그리 묵고 살았어. 그러니 학교도 못 다녔지.
누가 도와준 사람도 없었어. 그 당시 집안 몇 있어도 다 못사니까 나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열 살 먹어서부터 남에 일하기 시작한기라. 남에 논이나 밭에서, 촌에서 그것밖에 더 있소. 어리니까 꼴이나 베다주고 밥이나 얻어먹고. 품삯 받아봐야 보리쌀 1킬로도 안줘 보리쌀을. 입 먹고 살라고 일한기라. 나 산거는 말 못해.
아버지가 계셨으면 달랐지. 지금 같으면 할머니는 눈도 못 보지, 아무것도 없어서 영세민이라도 돼서 정부에서 나오지. 그때는 정부도 못사니 십원짜리 하나 못 주는거라. 밀가루라도 나왔겠지. 공출로 뺏어 가기나 하지. 지금 세상 같으면 그리 고생 안하지. 영세민, 그때는 그런 거 없었지.
너무 외롭게 자랐지, 나 산거는 얘기도 못 한당께. 책을 쓰면 짊어지지도 못한다 안하요, 내 산거 이야기 하면.
그때는 빨갱이 시키는 대로 안하면 살지도 못하는 세상이었어. 총을 들이밀면 밥 안 해주고 돼요? 내가 밥 안해주면 내가 총에 맞아 죽을 판인데 밥을 안 해줄 수 있나.
그때만 해도 길이 어디 있소. 수동에서 걸어오고 그랬는데 좁짝한 길을 걸어 다녔지. 여기 길이 오데 있어. 차도 안다녔어. 여기는 거창 넘어오는 길도 없었어, 소릿길만 있지. 신작로가 어디 있소. 저녁으로 빨갱이들이 이 길을 걸어 다닌거라.
치라골 여기도 당그래산에 한번 갔어. 우리끼리 묘를 쓴다고 갔어. 남자들 여남은 명이 발굴하러 갔는데 개발해서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기라. 부지를 몰라. 한 이십년 됐을 때 갔어, 근데 못 찾았어. 아무것도 안 나오더라. 얄궂이 신발짝 하나 나오더라. 발굴을 못했지 어디 구덩이인지 확실히 아는 사람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