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남 유족 구술
- 작성일
- 2025-08-19 16:07:58
- 조회수 :
-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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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남 유족 구술
희생된 가족이 세 명입니다. 우리 아버지랑 오빠 두 분이 돌아가셨어요. 당시 살던 곳은 용추사 있던 곳이었어요.
그때 나이가 내가 열여섯 먹었고 우리 작은 오빠랑은 네 살 터울이었응께 작은오빠는 스무살, 가운데 오빠는 스물 세 살 정도 됐었겠네요. 스물다섯까지도 안갔겠네요. 우리 아버지는 육십 하나인가 그랬고.
여순사건 때 빨치산들이 온 천지 산에 돌아다니고 있을 때인데 우리 오빠들이 나무를 모으는 집재 일을 했어요. 그때는 변변찮은 직업 같은 것도 없고 직장도 없고 다들 그런 걸 했어요. 그래서 우리 오빠 둘 하고 마을 사람들이랑 집재를 하다가 점심시간이 돼서 다 모여서 점심을 먹을라 하는데 산에서 반란사건 사람들이 내려와서 이름을 대라고 하는데 그때는 이게 죽는 일인 줄도 모르고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전부다 이름을 적어준 거라요.
그때가 음력 7월20일인데 22일날 빨갱이 토벌을 한다고 동네 사람들은 죽창을 만들어 들고 순경들은 총을 들고 황석산에 올라가서 빨갱이들을 잡은 거예요. 이름 적어 간 사람들이 잡힌 거지요. 잡힌 사람들은 이름 쓴 서류를 다 뺏기고 7월30일 순경이 마을에 와서 이름 써진 사람들을 전부 데리고 간 거예요.
그때는 차도 없고 순사도 걸어 올라와서 잡아가는데, 끈을 허리에 둘둘 묶어서 잡아갔어. 우리는 내동으로 이사한다고 이삿짐을 싸고 작은 오빠랑 나는 보리 갈라고 널어놓은 거 퍼 담고 있었고. 갑자기 소개하라고 하니까 어찌 된건지 알아보려고 가운데 오빠랑 아버지는 동네에 나갔지. 이 사실이 우째 된건지 알아보러 갔는데 못 돌아오고.
우리 살던 곳은 상원리 가는골이라고 불리던 곳인데 지금가면 산비탈이야. 거기 우리집 한 집 뿐이었어. 골짝골짝에 한 집씩 살던 때라. 여기 한집, 저기 한집 있을 때야, 평평한데 가면 또 한집 살고 그럴 때.
경찰이 명단을 보고 이름 있는 사람을 집집마다 다 데리고 갔어. 큰 오빠는 일찌감치 양자로 갔으니까 살았고. 가운데 오빠랑 아버지랑은 마을에 갔다가 잡혀가고 작은 오빠는 내 보는 앞에서 내만 놔두고 데려가서 그냥 다 죽였지.
우리뿐 아니라 동네에 몇 집 7명인가 데리고 갔어. 안의 골무산으로 가서 그 자리에서 바로 다 총살당했어요.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알아볼 데도 없고 군으로 경찰서로 사방으로 댕겨도 소식을 몰랐어. 알아보러 가 봐도 가르쳐 주도 안하고 우리만 애들 터주고, 안가르쳐 줘요. 그렇게 며칠 있다가 들으니까 다 총살을 당했다 하더라고요. 동네 청년들이 다 몰살했어.
동네 사람들 산에 일하는 사람 7명이었는데 전부 다 적어갔는데 잡아가서 죽였어. 택도 없는 사람, 산에 사는 사람 피해입고 죽은 사람 많아요.
우리는 몰랐을거여, 안의 골무산에 산지기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우리 동네 살다가 가서 동네 사람들 얼굴을 알아요. 그 사람이 죽이러 데리고 가는걸 봤다고 했어요. 그 사람 아니었으면 어디서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몰랐을거요.
그때 반란군들이 이 골짝에 넘어와 가지고 밥 얻어먹고 소 잡아다 먹고 하고 다른데로 넘어가다가 잡혀가지고 상판에서 일하던 사람 일곱 이름 쓴 거 그거 때문에 잡혀가서 죽었어요.
이름 쓰였어도 죽고 그냥 한 두 명씩 데려가서 죽이기도 하고 아유 그때는 이유도 없어요.
택도 아닌 사람들을 잡아다가 죽이고.
전부 경찰관들이 데려가서 죽였어요.
그 당시 무서워서 바로 찾으러 가지도 못하고 그 근처에 일렁거리면 다 총으로 쏴 죽이고 하니까 몇 달 지나고 사람을 사서 어머님이 시체를 찾으러 갔는데 벌써 다 썩은 거예요. 다 썩어서 뭐 확인을 하고 찾지도 못하고 옷만 보고 확인을 해서 우리만 찾아왔어요.
나머지 사람은 시체도 안 찾아갔는지 몰라, 젊어서 가족도 없고. 같이 가서 죽은 다른 사람 시체는 찾아가지도 못했어요. 장례도 못 치르고 그냥 묻었어.
우리는 이름 적어준거 그것 뿐이라요, 딴 거 아무것도 없고. 우리는 물 한 방울 안주고도 억울한 죽음을 당한기라.
그러고 나서 지서에서 난리통에 산중에 못산다고 아래로 다 내려가라고 해서 내동에 와 가지고 한 일주일쯤 있다가는 또 농사를 지으러 들어가라고 해서 또 들어가서 살았어요. 김신조 넘어왔을 때 골짜기 사는 사람은 한군데 살라고 해서 거기 살다가... 그러다 보니까 골짜기에 먹을 것도 없고 해서 동네 사람들도 도시로 많이 나가고 나는 우리 어머니랑 둘이 살았어요.
4남매인데 젤 큰오빠는 큰집에 양자로 가고. 어머니랑 단둘이 살았어. 할아버지 할머니도 벌써 돌아가시고. 그러고 나는 열아홉에 결혼해서 이럭저럭 살았어요.
엄마랑 농사 지으며 살았어요. 여자만 둘이 살았지요 뭐. 우리 힘이 모자라서 못하는 건 동네 아저씨들이 도와주고 해서 그냥 살았지요. 죽이면 그걸로 끝이야. 지금도 전쟁이 일어나면 그때처럼 똑같은 일이 벌어질까요.
희생된 가족이 세 명입니다. 우리 아버지랑 오빠 두 분이 돌아가셨어요. 당시 살던 곳은 용추사 있던 곳이었어요.
그때 나이가 내가 열여섯 먹었고 우리 작은 오빠랑은 네 살 터울이었응께 작은오빠는 스무살, 가운데 오빠는 스물 세 살 정도 됐었겠네요. 스물다섯까지도 안갔겠네요. 우리 아버지는 육십 하나인가 그랬고.
여순사건 때 빨치산들이 온 천지 산에 돌아다니고 있을 때인데 우리 오빠들이 나무를 모으는 집재 일을 했어요. 그때는 변변찮은 직업 같은 것도 없고 직장도 없고 다들 그런 걸 했어요. 그래서 우리 오빠 둘 하고 마을 사람들이랑 집재를 하다가 점심시간이 돼서 다 모여서 점심을 먹을라 하는데 산에서 반란사건 사람들이 내려와서 이름을 대라고 하는데 그때는 이게 죽는 일인 줄도 모르고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전부다 이름을 적어준 거라요.
그때가 음력 7월20일인데 22일날 빨갱이 토벌을 한다고 동네 사람들은 죽창을 만들어 들고 순경들은 총을 들고 황석산에 올라가서 빨갱이들을 잡은 거예요. 이름 적어 간 사람들이 잡힌 거지요. 잡힌 사람들은 이름 쓴 서류를 다 뺏기고 7월30일 순경이 마을에 와서 이름 써진 사람들을 전부 데리고 간 거예요.
그때는 차도 없고 순사도 걸어 올라와서 잡아가는데, 끈을 허리에 둘둘 묶어서 잡아갔어. 우리는 내동으로 이사한다고 이삿짐을 싸고 작은 오빠랑 나는 보리 갈라고 널어놓은 거 퍼 담고 있었고. 갑자기 소개하라고 하니까 어찌 된건지 알아보려고 가운데 오빠랑 아버지는 동네에 나갔지. 이 사실이 우째 된건지 알아보러 갔는데 못 돌아오고.
우리 살던 곳은 상원리 가는골이라고 불리던 곳인데 지금가면 산비탈이야. 거기 우리집 한 집 뿐이었어. 골짝골짝에 한 집씩 살던 때라. 여기 한집, 저기 한집 있을 때야, 평평한데 가면 또 한집 살고 그럴 때.
경찰이 명단을 보고 이름 있는 사람을 집집마다 다 데리고 갔어. 큰 오빠는 일찌감치 양자로 갔으니까 살았고. 가운데 오빠랑 아버지랑은 마을에 갔다가 잡혀가고 작은 오빠는 내 보는 앞에서 내만 놔두고 데려가서 그냥 다 죽였지.
우리뿐 아니라 동네에 몇 집 7명인가 데리고 갔어. 안의 골무산으로 가서 그 자리에서 바로 다 총살당했어요.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알아볼 데도 없고 군으로 경찰서로 사방으로 댕겨도 소식을 몰랐어. 알아보러 가 봐도 가르쳐 주도 안하고 우리만 애들 터주고, 안가르쳐 줘요. 그렇게 며칠 있다가 들으니까 다 총살을 당했다 하더라고요. 동네 청년들이 다 몰살했어.
동네 사람들 산에 일하는 사람 7명이었는데 전부 다 적어갔는데 잡아가서 죽였어. 택도 없는 사람, 산에 사는 사람 피해입고 죽은 사람 많아요.
우리는 몰랐을거여, 안의 골무산에 산지기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우리 동네 살다가 가서 동네 사람들 얼굴을 알아요. 그 사람이 죽이러 데리고 가는걸 봤다고 했어요. 그 사람 아니었으면 어디서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몰랐을거요.
그때 반란군들이 이 골짝에 넘어와 가지고 밥 얻어먹고 소 잡아다 먹고 하고 다른데로 넘어가다가 잡혀가지고 상판에서 일하던 사람 일곱 이름 쓴 거 그거 때문에 잡혀가서 죽었어요.
이름 쓰였어도 죽고 그냥 한 두 명씩 데려가서 죽이기도 하고 아유 그때는 이유도 없어요.
택도 아닌 사람들을 잡아다가 죽이고.
전부 경찰관들이 데려가서 죽였어요.
그 당시 무서워서 바로 찾으러 가지도 못하고 그 근처에 일렁거리면 다 총으로 쏴 죽이고 하니까 몇 달 지나고 사람을 사서 어머님이 시체를 찾으러 갔는데 벌써 다 썩은 거예요. 다 썩어서 뭐 확인을 하고 찾지도 못하고 옷만 보고 확인을 해서 우리만 찾아왔어요.
나머지 사람은 시체도 안 찾아갔는지 몰라, 젊어서 가족도 없고. 같이 가서 죽은 다른 사람 시체는 찾아가지도 못했어요. 장례도 못 치르고 그냥 묻었어.
우리는 이름 적어준거 그것 뿐이라요, 딴 거 아무것도 없고. 우리는 물 한 방울 안주고도 억울한 죽음을 당한기라.
그러고 나서 지서에서 난리통에 산중에 못산다고 아래로 다 내려가라고 해서 내동에 와 가지고 한 일주일쯤 있다가는 또 농사를 지으러 들어가라고 해서 또 들어가서 살았어요. 김신조 넘어왔을 때 골짜기 사는 사람은 한군데 살라고 해서 거기 살다가... 그러다 보니까 골짜기에 먹을 것도 없고 해서 동네 사람들도 도시로 많이 나가고 나는 우리 어머니랑 둘이 살았어요.
4남매인데 젤 큰오빠는 큰집에 양자로 가고. 어머니랑 단둘이 살았어. 할아버지 할머니도 벌써 돌아가시고. 그러고 나는 열아홉에 결혼해서 이럭저럭 살았어요.
엄마랑 농사 지으며 살았어요. 여자만 둘이 살았지요 뭐. 우리 힘이 모자라서 못하는 건 동네 아저씨들이 도와주고 해서 그냥 살았지요. 죽이면 그걸로 끝이야. 지금도 전쟁이 일어나면 그때처럼 똑같은 일이 벌어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