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이택, 박일규 유족 구술
- 작성일
- 2025-08-19 16: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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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이택, 박일규 유족 구술
치라골에서 그 사건으로 돌아가신 분이 몇분이신가요?
열일곱.
그때 날짜를 기억하시나요?
1949년도 음력 7월29일이고 잡혀간 날은 27일이야. 잡혀가서 3일 만에 죽었거든. 도북은 하루먼저 죽었어. 도북을 먼저 잡아가고 그 다음날 치라골 와서 잡아가고 그랬어.
함양 본서로 같이 넘어가서 도북사람은 하루 먼저 죽고 치라골 사람들은 하루 뒤에 죽었는데 잡아가기는 경찰이 잡아가고 죽이기는 군인들이 죽이고 그랬어.
어떻게 잡혀가셨나요?
빨갱이들 밥해주고 양식 줬다 그거야. 도북이나 여기나 다 그래, 그거 때문에 다 잡아다 죽였어.
그럼 그게 “죄가 되냐?” 그 후에 진실화해진상조사 할 때는 그 당시에 “양식주고 쌀 주고 한 건 죄가 아니다” 라고 했어. 그 시절에 빨갱이들 밥 안 해주면 어찌 살아. 안주면 죽이는데 죄가 되냐 말이지. 죄가 없다 해서 명예회복이 된 거지. 양민학살이다. 이거지.
그 당시는 경찰서장 아니라 대통령이라도 그 사람들이 죽인다고 양식 달라하면 안 줄 사람 누가 있어. 제 살려고 다 줬지.
근데 참 그걸 죄라고 다 잡아다 죽였어.
그날 기억을 말씀해주세요.
다 기억나. 우리가 그때 10살 11살 먹었을 땐데 촌에는 그때 아침에 소를 먹이러 가는데 소 먹여서 와 보니까 우리 동네 앞에 솔무더기 앞에 널널한 터가 있었는데 전부다 거기 모아놓고 포승줄로 사람들을 묶어가지고 있더라고. 사람들을 모아서 손을 묶고 하느라 시간이 걸리니까 우리가 소 먹이고 돌아오다 봤지.
옛날에는 이북 정치를 동조해도 죄가 아니었어. 그 당시 촌에는 없이 살아서 이북 정치를 동조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지. 왜 그러냐면 이남 정치는 있는 사람은 소작을 줘서 없는 사람들이 그 논을 부쳐서 도지를 주면 도지 받아서 그리 먹고 사니까. 근데 그때는 부자가 몇 없고 전부가 다 못살았으니 괜찮았는데 일정 때는 도지 줘야 되지 공출해야 되지 그거 다 주고 나면 먹고 살게 없어. 전부다 배가 고파. 그런데 이북 정치는 전부다 공평하게 갈라 먹고 산다고 하니까.
이남에서 그걸 죄라고 여기지 않다가 나중에 그게 심해지니까 이북으로 머리 둔 사람들 잡아들여라 해서 그때 산으로 도망간 애들이 빨갱이 인거라. 그 사람들 산에 있다가 밤 되면 내려와서 밥 달라고 하고 안 해주면 반동이라고 참나무 몽둥이를 들고 다니면서 때려. 그러면 줘야지 어떡해.
주고나면 또 지서에 가서 보고를 해야 돼. 밥 해 준거 지서에서 다 적어놔. 몇날 며칠에 밥을 해줬다고 지서에 보고를 하면 또 지서에서 밥해줬다고 뚜들겨 패. 보고 안하면 보고 안했다고 뚜들겨 패. 가운데서 농민들만 죽을 지경이라.
또 이게 심해진 게 지리산이 빨갱이 소굴이라 해서 김종환 부대라고 내려와서 토벌한다고 지서에다가 밥해준 그 사람들 잡아들여라 이렇게 된거라.
그러니 지서에다 밥해줬다고 신고했던 사람들 명단을 불러가지고 그 뒤에 끌고 가서 3일 만에 재판이고 뭐고 그것도 없이 바로 군인한테 넘겨서 죽였어.
죽여 놓고 군인들은 뭐했냐면 잡아놓고 전부 사진을 찍고 성명을 적고 빨갱이 몇 명 죽였다 하고 대통령한테 보고를 해. 그러면 대통령은 왜 죽였느냐 하는 게 아니라 잘했다고 죽인사람한테 표창장을 줬다고 하거든. 그러니까 이것들이 큰 성과를 올려야 된다 이러면서 막 죽인거라. 그기 법도 아이고 코도 아이고.
나중에 산으로 간 사람들이 다 잡혀서 몇 명 없었어. 빨갱이들도 많이 잡혀 죽고 몇 명이 없었어.
근데 그 사람들이 먹고 살아야 되니 내려와서 밥 얻어먹고 나면 저거는 고맙다고 또 이름을 적네, 아무데 가서 그 사람 도움을 받았다고 이름을 적어, 그럼 이 사람들이 잡히면 수첩에 나와, 그럼 지서에서 수첩에 적힌 사람 불러서 두들겨 패지.
그러니 그게 빨갱이도 저거 먹고 살라고 그랬고 이쪽에서는 그놈은 와 이북에 동조하느냐 사람 두들기제, 골짝사람 못 죽어 산기지, 산 것도 아니라.
지서에서 잡아가서 거꾸로 매달고 고춧물로 고문을 하고... 사실상은 사회질서 잡는다고 희생양으로 다 죽은거라.
그걸로 다 죽었는데 노무현 정부에서 조사를 수차례 해서 이거 죄가 안된다 했고. 그 앞전에는 다 빨갱이다 죄를 뒤집어 씌워서 죽였기 때문에 어디 가서 죽었다 소리도 못해. 빨갱이로 죄목을 몰았으니까.
실상 전부 죄 없이 죽었거든. 양민을 죽였으면 정부에서 그만한 사건을 보상을 다 해달라는 게 아니라. 근데 가족 위로는 해 줘야지. 양민을 그리 했으니 나중 역사에 사람을 그리 죽였으니 묻어놓지는 못할끼다. 양민을 죽였는데 보상이 왜 없느냐, 그건 당연한기거든. 죄 없는 사람을 죽였으니. 근데 아직 대한민국에서 묻어놓고 있다 말이지. 역사에 이걸 전부 무시할 건가 말이지, 그게 되는가 한 두 사람이라야 말이지. 지금은 세상이 밝을 대로 밝아도 밝은 게 아니고 이 사람들이 밝은데서 고마 양심을 최대한 묻어놓고 사는 세상이라, 이래 밝은데도.
사건 후 시신을 수습하러 가셨나요?
우리는 어렸지만 부모도 자식이 죽었어도 시신을 파 오지도 못했어. 빨갱이로 죽었다 했으니 그냥 겁이 나서. 그 세상은 그냥 죽이는 세상이야. 무서워서 못 가.
노 대통령 때 무덤 파러 찾아가 보니 못 찾았어. 군인들이 죽이고 나서 개울이 둘러 퍼진데 스실하게 묻어놨어. 2, 3년 후인가 8월 추석인가 비가 많이 와서 산사태가 나 물이 많이 내려왔어. 썩어서 뼈 뿐이라 말이지, 막 떠내려 왔어, 그때는 옥매리, 그 유림 앞에 함양 물 내려가는데 뼈가 여러 수십구 개울물로 떠내려간 것도 있고 강가로 밀려간 거 이런 거는 비가 그치고 나면 전부 다 드러나거든. 여러 수십구가 개울에 널브러져 있었다 케, 그러니 가 봐야 못 찾지 떠내려갔으니. 그런 세월을 지났어.
우리는 어려서 아심아심 하지만 부모 되는 분들은 사는 것도 아니고 그리 살다 다 죽었어.
형님에게 자녀는 없었나요?
형님 결혼해서 조카가 있었는데 죽었어. 형님 죽고 나서 그 이듬해 유복자로 태어났어. 난리 가운데 도북이고 여기고 빨갱이가 소 몰고 간다고 큰 동네로 갔다 놔라, 이삼일 만에 소개해라, 집을 비우라 했어. 자식이 죽었는데 무슨 정신이 있나. 어쩔 수 없이 큰 동네로 갔어. 큰 동네 가서 잠은 자고 농사는 여기에 심어놨으니 농사지으러 또 여기로 와야 돼. 그때가 가을철이다 말이지. 어린애가 낳는데 볼 사람이 누가 있나. 논길 밖에서 포대기 펴놓고 일 하는 기라. 그기 뭐 참 가을철에 날이 쌀랑하다 말이지, 감기에 걸려서 그리 죽었어. 돌볼 사람도 없고 말이지.
어린애 때는 부모가 젖을 제대로 주고 간호해야 크지. 남편 죽고 소개 왔다갔다 하는데 아 정신 쓸 일이 오데 있노. 아 보살필 겨를이 있는가. 추운 시절에 처박아놓고 일하다 보면 어릴 때는 병도 잘 걸리는 거라. 아프면 약도 없고 의사한테 갈 생각도 못했고.
살아 돌아온 사람은 없나요?
그 당시 치라골이 30호 정도 살았는데 열여덟이 끌려갔어. 그중에 잡혀갔다 살아 온 사람이 한 명 있었어. 임기택 이라고...
잡혀가서 죽일라고 앉혀놨는데 거기서 살아나왔어.
옛날에는 젖을 먹여 애를 키웠는데 임기택 엄마가 젖이 작았어. 그 동네 사는 사람이 딸을 낳았는데 기택이랑 동갑이라 그 집 젖을 같이 물려서 컸어. 양엄라 택이라. 서로 형제처럼 지냈어. 임기택이가 잡혀가서 죽게 되니까 임기택 아버지가 그 여자를 찾아갔지. 여자 남편이 함양에 형사대장인기라. 여자가 남편한테 말하니 지금 가면 살았을랑가 죽었을랑가 모르것다 하더라 케. 군인 차를 타고 거기 가서 임기택 찾아 손 들어 보라니까 죽일라고 쭉 앉혀놨는데 거기서 손을 들더라 케, 그래서 거기서 끄집어 낸기라. 그 순간, 조금만 넘었으면 죽는기라.
그 사람은 나와서 그길로 서울 올라 가 삐리고. 거기서 살아나왔지만 세세히 얘기를 다 안 해줘, 다른 사람은 죽고 해서.
그걸 알게 된 게 노무현 대통령 때 진실화해위원회에서 파악할 때 유족 모임에서 임기택이 살아나왔다 해서 여자를 찾아가서 물으니까 그리 말했어.
그 뒤에 내하고 한 사람하고 오째서 기택이가 살아나왔느냐 알아볼라니까 그 부인 산다는 곳을 찾아갔더니 그 여자 친정이 치라골이라고 해. 친정에 가고 없다 해서 여기 와서 알아보니, 저거 남편이랑 군인장교가 가서 기택이 찾아가니까 죽일라고 열을 세워 놨더라 한다고 그 여자가 얘기해. 기택이는 그런 소리도 안해. 기택이는 다 죽고 혼자 살아나왔으니 그런 얘기도 안해. 그 여자가 그리 말해 알았지.
나중에 역사에 이 일을 어찌 기록할라고 이러는지 몰라.
그 당시에 이승만이 대통령을 했는데 그때 정치는 깡패들 앞세운 정치였어. 국회의원이고 뭐고 다 깡패들 앞세워서 하니 그게 무슨 정치가 되며, 그게 정치인가.
해방되고 처음에는 일본에 머리 쓴 사람을 정치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그 사람들을 탄압할 줄 알았는데... 일정 때 순사, 형사 해 먹은 사람이 배운 것 도 조금 있고 머리 쓰는 게 농촌 농민보다 더 위에 있거든. 그 당시는 다 무식했어, 유식하다 하는 것이 한문 조금 읽고 그라모 또 학교라도 중학교 나온 사람 몇 안됐어. 그러니 일정 때 면서기, 순사 해 먹던 사람들 요 사람들이 전부다 그 앞잡이가 됐어, 이승만이 앞잡이.
그런 사람들이 섞여서 면서기고 뭐고 다 해먹었으니 정치가 바로 됐을 리가 없지. 개국하고 질서가 없었어. 35년간 일본 종질 하다가 개국을 하니 개판이었지.
다들 이북 정치가 고르게 나눠준다 하니 좋아했는데 이승만이 토지 재분배해서 그 이후에 이남 정치로 마음 돌린 사람도 많고 그나마 대한민국이 좀 고르게 살만해 진거라.
어린애 한둘 논 사람, 칠팔십 다 됐어. 지금은 도북에 제를 지내러 가는데 우리가 생각하기로는 그렇지. 많이 가야 한 십년 좀 더 가면 제 지낸다고 거기 올 사람도 없을끼라 그거지. 십년 지나면 구십인데 그 안에 다 죽는다 말이지. 그 밑에 손자들은 관심 있느냐, 관심없어요, 친 할배가 오래 살아계시다 죽어도 묘에 그런 관심 크게 없어. 한 다리가 천리라고 아들하고 손자가 또 틀려.
참 불쌍하게 죽은 사람들이지만 제 지낸다고 하면 몇이 올랑가. 우리도 그 밑에 자손 있어도 제 지낸다 해도 갈 사람 한명도 없어. 우리들은 나이가 많아서 그렇제. 좀 있으면 죽을거제.
젊은 사람은 이걸 알도 못 하구만, 죽은 줄은 알아도 그 내용을 잘 몰라.
정부에서 죄라고 하면 그것도 죄지. 따지고 보면 그걸 죄라고 볼 수 없는 건데, 사실상 대한민국 정부에서 그걸 단속 못하고 그리 한 것이 과실이지. 정부에 힘이 있다하면 경찰을 파견해서 그 사람들을 잡든가 못 오게 하든가 조치를 취해야지 양식 준 사람을 죄 있다고... 안 주고 어짤끼라 순경 저라도 양식 달라면 안주고 우짤낀데 그 참.
옛날에야 그랬다 쳐도 지금 정의를 구현한다는 사람들이...
우리세대 우리 때 지나고 나면 아무도 몰라 이런 일은.
치라골에서 그 사건으로 돌아가신 분이 몇분이신가요?
열일곱.
그때 날짜를 기억하시나요?
1949년도 음력 7월29일이고 잡혀간 날은 27일이야. 잡혀가서 3일 만에 죽었거든. 도북은 하루먼저 죽었어. 도북을 먼저 잡아가고 그 다음날 치라골 와서 잡아가고 그랬어.
함양 본서로 같이 넘어가서 도북사람은 하루 먼저 죽고 치라골 사람들은 하루 뒤에 죽었는데 잡아가기는 경찰이 잡아가고 죽이기는 군인들이 죽이고 그랬어.
어떻게 잡혀가셨나요?
빨갱이들 밥해주고 양식 줬다 그거야. 도북이나 여기나 다 그래, 그거 때문에 다 잡아다 죽였어.
그럼 그게 “죄가 되냐?” 그 후에 진실화해진상조사 할 때는 그 당시에 “양식주고 쌀 주고 한 건 죄가 아니다” 라고 했어. 그 시절에 빨갱이들 밥 안 해주면 어찌 살아. 안주면 죽이는데 죄가 되냐 말이지. 죄가 없다 해서 명예회복이 된 거지. 양민학살이다. 이거지.
그 당시는 경찰서장 아니라 대통령이라도 그 사람들이 죽인다고 양식 달라하면 안 줄 사람 누가 있어. 제 살려고 다 줬지.
근데 참 그걸 죄라고 다 잡아다 죽였어.
그날 기억을 말씀해주세요.
다 기억나. 우리가 그때 10살 11살 먹었을 땐데 촌에는 그때 아침에 소를 먹이러 가는데 소 먹여서 와 보니까 우리 동네 앞에 솔무더기 앞에 널널한 터가 있었는데 전부다 거기 모아놓고 포승줄로 사람들을 묶어가지고 있더라고. 사람들을 모아서 손을 묶고 하느라 시간이 걸리니까 우리가 소 먹이고 돌아오다 봤지.
옛날에는 이북 정치를 동조해도 죄가 아니었어. 그 당시 촌에는 없이 살아서 이북 정치를 동조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지. 왜 그러냐면 이남 정치는 있는 사람은 소작을 줘서 없는 사람들이 그 논을 부쳐서 도지를 주면 도지 받아서 그리 먹고 사니까. 근데 그때는 부자가 몇 없고 전부가 다 못살았으니 괜찮았는데 일정 때는 도지 줘야 되지 공출해야 되지 그거 다 주고 나면 먹고 살게 없어. 전부다 배가 고파. 그런데 이북 정치는 전부다 공평하게 갈라 먹고 산다고 하니까.
이남에서 그걸 죄라고 여기지 않다가 나중에 그게 심해지니까 이북으로 머리 둔 사람들 잡아들여라 해서 그때 산으로 도망간 애들이 빨갱이 인거라. 그 사람들 산에 있다가 밤 되면 내려와서 밥 달라고 하고 안 해주면 반동이라고 참나무 몽둥이를 들고 다니면서 때려. 그러면 줘야지 어떡해.
주고나면 또 지서에 가서 보고를 해야 돼. 밥 해 준거 지서에서 다 적어놔. 몇날 며칠에 밥을 해줬다고 지서에 보고를 하면 또 지서에서 밥해줬다고 뚜들겨 패. 보고 안하면 보고 안했다고 뚜들겨 패. 가운데서 농민들만 죽을 지경이라.
또 이게 심해진 게 지리산이 빨갱이 소굴이라 해서 김종환 부대라고 내려와서 토벌한다고 지서에다가 밥해준 그 사람들 잡아들여라 이렇게 된거라.
그러니 지서에다 밥해줬다고 신고했던 사람들 명단을 불러가지고 그 뒤에 끌고 가서 3일 만에 재판이고 뭐고 그것도 없이 바로 군인한테 넘겨서 죽였어.
죽여 놓고 군인들은 뭐했냐면 잡아놓고 전부 사진을 찍고 성명을 적고 빨갱이 몇 명 죽였다 하고 대통령한테 보고를 해. 그러면 대통령은 왜 죽였느냐 하는 게 아니라 잘했다고 죽인사람한테 표창장을 줬다고 하거든. 그러니까 이것들이 큰 성과를 올려야 된다 이러면서 막 죽인거라. 그기 법도 아이고 코도 아이고.
나중에 산으로 간 사람들이 다 잡혀서 몇 명 없었어. 빨갱이들도 많이 잡혀 죽고 몇 명이 없었어.
근데 그 사람들이 먹고 살아야 되니 내려와서 밥 얻어먹고 나면 저거는 고맙다고 또 이름을 적네, 아무데 가서 그 사람 도움을 받았다고 이름을 적어, 그럼 이 사람들이 잡히면 수첩에 나와, 그럼 지서에서 수첩에 적힌 사람 불러서 두들겨 패지.
그러니 그게 빨갱이도 저거 먹고 살라고 그랬고 이쪽에서는 그놈은 와 이북에 동조하느냐 사람 두들기제, 골짝사람 못 죽어 산기지, 산 것도 아니라.
지서에서 잡아가서 거꾸로 매달고 고춧물로 고문을 하고... 사실상은 사회질서 잡는다고 희생양으로 다 죽은거라.
그걸로 다 죽었는데 노무현 정부에서 조사를 수차례 해서 이거 죄가 안된다 했고. 그 앞전에는 다 빨갱이다 죄를 뒤집어 씌워서 죽였기 때문에 어디 가서 죽었다 소리도 못해. 빨갱이로 죄목을 몰았으니까.
실상 전부 죄 없이 죽었거든. 양민을 죽였으면 정부에서 그만한 사건을 보상을 다 해달라는 게 아니라. 근데 가족 위로는 해 줘야지. 양민을 그리 했으니 나중 역사에 사람을 그리 죽였으니 묻어놓지는 못할끼다. 양민을 죽였는데 보상이 왜 없느냐, 그건 당연한기거든. 죄 없는 사람을 죽였으니. 근데 아직 대한민국에서 묻어놓고 있다 말이지. 역사에 이걸 전부 무시할 건가 말이지, 그게 되는가 한 두 사람이라야 말이지. 지금은 세상이 밝을 대로 밝아도 밝은 게 아니고 이 사람들이 밝은데서 고마 양심을 최대한 묻어놓고 사는 세상이라, 이래 밝은데도.
사건 후 시신을 수습하러 가셨나요?
우리는 어렸지만 부모도 자식이 죽었어도 시신을 파 오지도 못했어. 빨갱이로 죽었다 했으니 그냥 겁이 나서. 그 세상은 그냥 죽이는 세상이야. 무서워서 못 가.
노 대통령 때 무덤 파러 찾아가 보니 못 찾았어. 군인들이 죽이고 나서 개울이 둘러 퍼진데 스실하게 묻어놨어. 2, 3년 후인가 8월 추석인가 비가 많이 와서 산사태가 나 물이 많이 내려왔어. 썩어서 뼈 뿐이라 말이지, 막 떠내려 왔어, 그때는 옥매리, 그 유림 앞에 함양 물 내려가는데 뼈가 여러 수십구 개울물로 떠내려간 것도 있고 강가로 밀려간 거 이런 거는 비가 그치고 나면 전부 다 드러나거든. 여러 수십구가 개울에 널브러져 있었다 케, 그러니 가 봐야 못 찾지 떠내려갔으니. 그런 세월을 지났어.
우리는 어려서 아심아심 하지만 부모 되는 분들은 사는 것도 아니고 그리 살다 다 죽었어.
형님에게 자녀는 없었나요?
형님 결혼해서 조카가 있었는데 죽었어. 형님 죽고 나서 그 이듬해 유복자로 태어났어. 난리 가운데 도북이고 여기고 빨갱이가 소 몰고 간다고 큰 동네로 갔다 놔라, 이삼일 만에 소개해라, 집을 비우라 했어. 자식이 죽었는데 무슨 정신이 있나. 어쩔 수 없이 큰 동네로 갔어. 큰 동네 가서 잠은 자고 농사는 여기에 심어놨으니 농사지으러 또 여기로 와야 돼. 그때가 가을철이다 말이지. 어린애가 낳는데 볼 사람이 누가 있나. 논길 밖에서 포대기 펴놓고 일 하는 기라. 그기 뭐 참 가을철에 날이 쌀랑하다 말이지, 감기에 걸려서 그리 죽었어. 돌볼 사람도 없고 말이지.
어린애 때는 부모가 젖을 제대로 주고 간호해야 크지. 남편 죽고 소개 왔다갔다 하는데 아 정신 쓸 일이 오데 있노. 아 보살필 겨를이 있는가. 추운 시절에 처박아놓고 일하다 보면 어릴 때는 병도 잘 걸리는 거라. 아프면 약도 없고 의사한테 갈 생각도 못했고.
살아 돌아온 사람은 없나요?
그 당시 치라골이 30호 정도 살았는데 열여덟이 끌려갔어. 그중에 잡혀갔다 살아 온 사람이 한 명 있었어. 임기택 이라고...
잡혀가서 죽일라고 앉혀놨는데 거기서 살아나왔어.
옛날에는 젖을 먹여 애를 키웠는데 임기택 엄마가 젖이 작았어. 그 동네 사는 사람이 딸을 낳았는데 기택이랑 동갑이라 그 집 젖을 같이 물려서 컸어. 양엄라 택이라. 서로 형제처럼 지냈어. 임기택이가 잡혀가서 죽게 되니까 임기택 아버지가 그 여자를 찾아갔지. 여자 남편이 함양에 형사대장인기라. 여자가 남편한테 말하니 지금 가면 살았을랑가 죽었을랑가 모르것다 하더라 케. 군인 차를 타고 거기 가서 임기택 찾아 손 들어 보라니까 죽일라고 쭉 앉혀놨는데 거기서 손을 들더라 케, 그래서 거기서 끄집어 낸기라. 그 순간, 조금만 넘었으면 죽는기라.
그 사람은 나와서 그길로 서울 올라 가 삐리고. 거기서 살아나왔지만 세세히 얘기를 다 안 해줘, 다른 사람은 죽고 해서.
그걸 알게 된 게 노무현 대통령 때 진실화해위원회에서 파악할 때 유족 모임에서 임기택이 살아나왔다 해서 여자를 찾아가서 물으니까 그리 말했어.
그 뒤에 내하고 한 사람하고 오째서 기택이가 살아나왔느냐 알아볼라니까 그 부인 산다는 곳을 찾아갔더니 그 여자 친정이 치라골이라고 해. 친정에 가고 없다 해서 여기 와서 알아보니, 저거 남편이랑 군인장교가 가서 기택이 찾아가니까 죽일라고 열을 세워 놨더라 한다고 그 여자가 얘기해. 기택이는 그런 소리도 안해. 기택이는 다 죽고 혼자 살아나왔으니 그런 얘기도 안해. 그 여자가 그리 말해 알았지.
나중에 역사에 이 일을 어찌 기록할라고 이러는지 몰라.
그 당시에 이승만이 대통령을 했는데 그때 정치는 깡패들 앞세운 정치였어. 국회의원이고 뭐고 다 깡패들 앞세워서 하니 그게 무슨 정치가 되며, 그게 정치인가.
해방되고 처음에는 일본에 머리 쓴 사람을 정치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그 사람들을 탄압할 줄 알았는데... 일정 때 순사, 형사 해 먹은 사람이 배운 것 도 조금 있고 머리 쓰는 게 농촌 농민보다 더 위에 있거든. 그 당시는 다 무식했어, 유식하다 하는 것이 한문 조금 읽고 그라모 또 학교라도 중학교 나온 사람 몇 안됐어. 그러니 일정 때 면서기, 순사 해 먹던 사람들 요 사람들이 전부다 그 앞잡이가 됐어, 이승만이 앞잡이.
그런 사람들이 섞여서 면서기고 뭐고 다 해먹었으니 정치가 바로 됐을 리가 없지. 개국하고 질서가 없었어. 35년간 일본 종질 하다가 개국을 하니 개판이었지.
다들 이북 정치가 고르게 나눠준다 하니 좋아했는데 이승만이 토지 재분배해서 그 이후에 이남 정치로 마음 돌린 사람도 많고 그나마 대한민국이 좀 고르게 살만해 진거라.
어린애 한둘 논 사람, 칠팔십 다 됐어. 지금은 도북에 제를 지내러 가는데 우리가 생각하기로는 그렇지. 많이 가야 한 십년 좀 더 가면 제 지낸다고 거기 올 사람도 없을끼라 그거지. 십년 지나면 구십인데 그 안에 다 죽는다 말이지. 그 밑에 손자들은 관심 있느냐, 관심없어요, 친 할배가 오래 살아계시다 죽어도 묘에 그런 관심 크게 없어. 한 다리가 천리라고 아들하고 손자가 또 틀려.
참 불쌍하게 죽은 사람들이지만 제 지낸다고 하면 몇이 올랑가. 우리도 그 밑에 자손 있어도 제 지낸다 해도 갈 사람 한명도 없어. 우리들은 나이가 많아서 그렇제. 좀 있으면 죽을거제.
젊은 사람은 이걸 알도 못 하구만, 죽은 줄은 알아도 그 내용을 잘 몰라.
정부에서 죄라고 하면 그것도 죄지. 따지고 보면 그걸 죄라고 볼 수 없는 건데, 사실상 대한민국 정부에서 그걸 단속 못하고 그리 한 것이 과실이지. 정부에 힘이 있다하면 경찰을 파견해서 그 사람들을 잡든가 못 오게 하든가 조치를 취해야지 양식 준 사람을 죄 있다고... 안 주고 어짤끼라 순경 저라도 양식 달라면 안주고 우짤낀데 그 참.
옛날에야 그랬다 쳐도 지금 정의를 구현한다는 사람들이...
우리세대 우리 때 지나고 나면 아무도 몰라 이런 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