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천지구 양민 피살 및 방화사건

일 시
1951년 5월
장 소
함양군 휴천면 엄천지구 일대 (동강리점촌, 남호리 절터 등)
당시정황
1950년 6.25전쟁 이후 낙동강 및 대구까지 후퇴하였으나 연합군 및 국군의 반격과 맥아더의 인천상륙 및 수도서울의 탈환으로 인민군의 퇴로가 차단되어 인민군의 일부가 지리산으로 피신하여 야간에는 민가를 약탈하거나 민간 좌익분자와 연합하여 우익 세력을 사살하여 동족상잔의 비극이 연속이었다. 특히 엄천지구 5개 리는 국군과 인민군의 접전지로 야간에는 인민공화국세상, 낮에는 국방군 세상으로 인명 및 그 재산의 피해는 극에 달하였다. 이때 국군11사단 소속 병력 일부가 산청군 금석골에서 방곡으로 공비 토벌작전을 전개하면서 선발대가 휴천면 동강리 점촌에 도착했을 때 점촌 뒷산에 피신하고 있는 인민군(공비) 잔당이 무차별 사격으로 국방군 병력이 사살되었다. 이에 격분한 국방군이 휴천면 동강리 점촌에서 양민을 집단 학살하고, 다시 남호리 절터(동호)에서도 양민을 학살코자 구덩이까지 파놓고 학살하려 하였으나, 한우까지 잡아놓고 무고한 양민을 학살치 말라고 간청하여 겨우 학살은 모면하였으며, 다시 유림면 서주로 진행하여 서주 천변에서 군인과 경찰 가족은 제외시키고 구덩이에 몰아넣고 휘발유를 살포하고 학살하였다.

대표적 피해사항

  • 재산 : 1951년 이후 엄천지구는 접전지로서 동강리, 운서리, 송전리는 공비들의 은닉처 및 식량 공급처라 하여 1951년 5월에 전 주민 소개와 동시에 가옥을 완전 불태웠으며, 2차로 1952년 2월에 위 3개리 남은 가옥과 남호리, 문정리 일대 가옥을 완전 불태웠다.
  • 당시 가옥 피해상황 – 1차 : 동강리, 운서리, 송전리 – 1,440동 / 2차 : 남호리, 몬정리 – 975동 / 총 계 : 2,415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