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지구 주민 피살사건

일 시
1951년 2월 8일
장 소
함양군 유림면 서주리 서주마을 앞
당시정황
1951년 2월 8일(음 1월 2일) 이른 아침 지리산 서남지구 공비 토벌대가 산청군 금서면 향양리(일명 금석골)에서 산청군 금서면 가현리, 방곡리, 자혜리, 주상리와 유림면 손곡리, 서주리에서 작전 수행 차 각각 분산 배치하여 위 마을 주민을 모아 사살한 사건이다. 금서면 가현 방곡리 주민을 방곡리에서 사살(380여명이라는 설이 있음) 하였으며, 그 중 일부 군인이 유림면 서주리로 진군하면서 금서면 자혜리, 주상리, 화계리 주민과 유림면 손곡리 주민을 서주마을 앞에 모아놓고 서주마을 주민을 동원, 고지 참호를 판다면서 마을 앞산 밑에 구덩이를 파게 한 후 모인 주민 중 통비분자로 추정되는 주민을 선별하여 16:00~17:00경 약 217명(일설 370명)을 사살한 후 사체를 방치한 채 당일 산청군 생초면 방면으로 진군하였다는 사건이다. 사건 당시 손곡리, 금서면 방곡리 지역은 경찰력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여 낮에는 군인이 주둔하여 주민을 통솔하고 밤에는 인민군 또는 빨치산이 출몰하여 주민의 협조를 강제하여 목숨의 유지를 위해 빨치산에 협조한 사례도 일부 있으나 고의적 협조가 아니었으며 사망자 또는 노약자, 부녀자가 대부분이고 어린 아이도 희생됐다.

대표적 피해사항

  • 인명 47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