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성, 등구마을 주민 연행 행불사건

일 시
1950년 12월 경 (음 11월 중순 추정)
장 소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구양리
당시정황
6. 25전쟁 시 인천상륙작전으로 다른 지역은 1950년 9월에 수복이 되었으나 지리산을 중심으로 지역이 험준한 남원군 산내면과 마천면, 휴천면 엄천지역에는 후퇴를 못한 인민군과 적의 치하에 종사한 각종 조직의 추종자들이 운집하고 있어 3개월간 수복이 늦어져 적의 치하에 있었다. 국군이 동년 12월 경(일자 미확인) 밤에 산청군 삼장면 대원사쪽에서 쑥밭재를 넘어 추성리 속칭 어름터 광점골을 거쳐 추성, 의평 마을에서 자고 그 다음날 휴천면 엄천계곡으로 가는 도중 용유담 부근에서 후퇴 못한 적의 사격을 받아 진로를 남원군 산내면 방면으로 퇴각하였다고 한다. 이어서 그날 저녁 1950년 12월 경 다른 부대가 같은 경로로 진입하여 추성마을을 수색하고 인근 의평마을에 2일간 본부를 두고 적을 색출하기 위해 인근 구양리 등구마을도 수색하였다. 이 수색을 하는 과정에 추성마을 주민 11명, 등구마을 주민 9명을 적치하의 추종자로 단정, 연행 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처리가 되었는지 지금까지 생사를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군부대가 입성하자 당시 지역에 있던 인민군이나 적 치하의 추종자들은 입산하였거나 대피하여 국군에게 한명도 체포되지 않았다고 한다. 연행된 20명의 주민은 순수하고 무지한 주민이었다. 국군은 이 지역 주민을 인민군의 동조자로 인정, 오인하여 추성마을 40여 가구를 방화, 소실하였다. 동구마을 주민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군부대 소속은 전혀 몰랐으나 뒤에 의평마을에 주둔하고 있으면서 대대장이 자기 소개를 해서 성명을 알았다고 한다. 이 부대가 수복을 하고 철수와 동시 치안이 이루어졌으나 후퇴하지 못한 잔여 공비가 지리산으로 퇴각하여 완전 소탕되는 1954년까지 국군이 공비 소탕 과정에서 지역 주민은 많은 희생과 시달림을 받았다.

대표적 피해사항

  • 재산 - 추성마을 주택 40여 동 방화 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