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면 도북마을 양민 학살사건
- 일 시
- 1949년 음력 윤 7월 28일 12시 경
- 장 소
- 함양 당그래산
- 당시정황
- 여순사건 이후 지역에 잠입한 공비를 소탕하기 위해 온 군민이 죽창을 들고 한참 공비토벌에 나설 때다. 1949년 8월(음력 7월 29일 경) 이날 주민들은 죽창을 들고 공비 토벌을 위해 도북 뒷산 치라골 북제라는 숲을 정찰하여 토굴 속에 6명의 공비가 은거하는 아지트를 발견, 4명을 놓치고 2명(남, 여)을 생포하여 수동지서에 인계했다. 수동지서로 잡혀간 공비(이발사 정○○)를 취조하자 그는 도북마을 사람들 모두 빨갱이라고 거짓 진술을 한다. 당시 지서장은 정○○의 거짓 진술을 믿고 이발사의 외상장부에 적힌 마을 사람들 가운데 당시 자리를 피하거나 출타 중이었던 사람을 제외한 35명을 끌고 가 군부대로 넘겨 버렸다. 결국 갖은 고문 끝에 잡혀간 지 2일 만에 함양읍 남산 당그래산에서 32명(3명은 생존)은 무참하게 학살당했으며 3명은 화를 면하였다.
도북 유족회(추진위원장 차용현)는 억울하게 죽어간 영령들을 기리고 전후세대에서 산 교육장으로 보존하고 재조명을 할 수 있도록 지난 1981년 국회에 탄원서를 제출한 바 있으며, 당그래산에서 억울하게 묻힌 고인들의 유해들을 92.12.18 고향 도북으로 이장하여 위령비를 세우고 유족 합동으로 제를 지내 고인들의 영령들을 달래주고 있다.
대표적 피해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