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석상룡 (石祥龍) : 미상
- 작성일
- 2016-07-15 14:23:34
- 작성자
- 관리자
- 조회수 :
- 516
한말의 의병 참모장인 장군의 자는 용현(龍見)이며 함양군 마천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병정놀이를 즐겨했으며 힘이 장사였고 용맹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어 우리나라가 일제 치하에 들어가게 되자 기울어진 국운을 건져보겠다고 스스로 의병에 참가하여 참모장을 임명받고 지리산을 무대로하여 일본군과 싸워 수많은 전과를 올렸다.
그의 용맹이 출중해서 석상룡의 부대를 무서워했으며 장군을 비호장군이라 불렀다.
이러한 무공을 전장에서 수없이 올렸으나 끝내 일본 헌병에게 붙들려 심한 고문을 받고 투옥되어 5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 후 출옥해서도 당시의 고문 후유증으로 몇해를 고생하다가 1920년 10월 일생을 마쳤다.
마천면 추성리에서 산청의 삼장면으로 가는 약 12km 되는 유두암(流頭岩)에 그의 송공비가 있고 1983년 광복절에 정부의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또한 마천면에서 전북 남원시로 나오는 도계 지점에 그의 공적비가 있다.
어려서부터 병정놀이를 즐겨했으며 힘이 장사였고 용맹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어 우리나라가 일제 치하에 들어가게 되자 기울어진 국운을 건져보겠다고 스스로 의병에 참가하여 참모장을 임명받고 지리산을 무대로하여 일본군과 싸워 수많은 전과를 올렸다.
그의 용맹이 출중해서 석상룡의 부대를 무서워했으며 장군을 비호장군이라 불렀다.
이러한 무공을 전장에서 수없이 올렸으나 끝내 일본 헌병에게 붙들려 심한 고문을 받고 투옥되어 5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 후 출옥해서도 당시의 고문 후유증으로 몇해를 고생하다가 1920년 10월 일생을 마쳤다.
마천면 추성리에서 산청의 삼장면으로 가는 약 12km 되는 유두암(流頭岩)에 그의 송공비가 있고 1983년 광복절에 정부의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또한 마천면에서 전북 남원시로 나오는 도계 지점에 그의 공적비가 있다.
- 담당
- 문화관광과 문화재담당 (☎ 055-960-4540)
- 최종수정일
- 2023.11.17 13:4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