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서기보 (書記補) : 미상
- 작성일
- 2016-07-15 14:22:57
- 작성자
- 관리자
- 조회수 :
- 545
효자 서기보의 호는 모와(慕窩), 부호군 현립의 후손이다.
13세 때, 어머니 병환에 집이 가난하여 약을 사드리기가 어려워 울며 관청에 사실을 고하니 군수 조준명이 쌀과 고기를 후하게 주었다.
어머니 병이 낫지 않음을 보고 사람들이 사슴고기가 가장 좋다고 하였다.
울면서 산에 들어가니 범이 사슴 한 마리를 물고 와 앞에 내던지므로 가지고 돌아 와 드려서 효험을 보았다. 상사를 당하여서는 슬피 울고 가슴 두드림이 지나칠 정도였다.
후에 아버지 상을 마치고, 어머니 초상에 정성을 다 못한 것이 한이 되어 다시 개장을 후하게 하고 통곡을 하며 죽만 먹었다.
후일 가선병참에 증직되고, 1866년(고종 3년)에 정명이 내렸다.
그의 셋째아들 서정순은 아버지의 효행을 물려 받았다.
아버지의 병환에 변을 맛보며 손가락을 잘라 주혈하였으나 세상을 떠나자 예법에 따라 장례를 지냈으며 다리의 병을 불구하고 날마다 절룩이며 성묘하고 3년동안 죽을 먹었다.
1890년(고종27년)에 동몽교관에 증직되고 정명이 내렸다.
유림면 웅평마을 뒤편에 2대에 걸친 효자의 정려가 있다.
13세 때, 어머니 병환에 집이 가난하여 약을 사드리기가 어려워 울며 관청에 사실을 고하니 군수 조준명이 쌀과 고기를 후하게 주었다.
어머니 병이 낫지 않음을 보고 사람들이 사슴고기가 가장 좋다고 하였다.
울면서 산에 들어가니 범이 사슴 한 마리를 물고 와 앞에 내던지므로 가지고 돌아 와 드려서 효험을 보았다. 상사를 당하여서는 슬피 울고 가슴 두드림이 지나칠 정도였다.
후에 아버지 상을 마치고, 어머니 초상에 정성을 다 못한 것이 한이 되어 다시 개장을 후하게 하고 통곡을 하며 죽만 먹었다.
후일 가선병참에 증직되고, 1866년(고종 3년)에 정명이 내렸다.
그의 셋째아들 서정순은 아버지의 효행을 물려 받았다.
아버지의 병환에 변을 맛보며 손가락을 잘라 주혈하였으나 세상을 떠나자 예법에 따라 장례를 지냈으며 다리의 병을 불구하고 날마다 절룩이며 성묘하고 3년동안 죽을 먹었다.
1890년(고종27년)에 동몽교관에 증직되고 정명이 내렸다.
유림면 웅평마을 뒤편에 2대에 걸친 효자의 정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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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관광과 문화재담당 (☎ 055-960-4540)
- 최종수정일
- 2023.11.17 13:4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