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문태서 (文泰瑞) : 1880~1912
- 작성일
- 2016-07-15 14:08:04
- 작성자
- 관리자
- 조회수 :
- 780
구한말 호남의병대장으로 호는 의재(義齋)이며 부민후 문익헌의 후손이다. 고종때(1880)에 안의군 서상면 장고지에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의지가 견고하였다.
한일 조약후로 충군애국하는 마음이 가슴에서 우러나 생업을 버리고 1906년 창의하여 덕유산을 중심으로 경남, 전북, 충북, 경북등 광범위한 지역에서 일본군과 투쟁하였다.특히 장수 수비대습격, 고창곡전투, 남덕유산 유인작전, 7읍 연합수비대 교전, 이원역 폭파등이 유명하며 수십차례의 격전에서 일본군 수백명을 사살하고 400여점의 무기를 노획하여 일본군들도 덕유산 호랑이라고 불렀다.
굽힐줄 모르는 의기와 희생정신은 애국애족과 조국 근대화의 싹을 틔웠고 해외 독립투쟁에도 영향을 주어 조국광복의 밑거름이 되었다.
6년간의 투쟁 끝에 체포되어 옥중 순국하여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안의면 광풍루에 사적비가 있으며 서상중학교 앞에 2000년부터 성역화 사업을 하여 기념비와 사당이 있다.
건국공로훈장 복장을 추서받았다.
한일 조약후로 충군애국하는 마음이 가슴에서 우러나 생업을 버리고 1906년 창의하여 덕유산을 중심으로 경남, 전북, 충북, 경북등 광범위한 지역에서 일본군과 투쟁하였다.특히 장수 수비대습격, 고창곡전투, 남덕유산 유인작전, 7읍 연합수비대 교전, 이원역 폭파등이 유명하며 수십차례의 격전에서 일본군 수백명을 사살하고 400여점의 무기를 노획하여 일본군들도 덕유산 호랑이라고 불렀다.
굽힐줄 모르는 의기와 희생정신은 애국애족과 조국 근대화의 싹을 틔웠고 해외 독립투쟁에도 영향을 주어 조국광복의 밑거름이 되었다.
6년간의 투쟁 끝에 체포되어 옥중 순국하여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안의면 광풍루에 사적비가 있으며 서상중학교 앞에 2000년부터 성역화 사업을 하여 기념비와 사당이 있다.
건국공로훈장 복장을 추서받았다.
- 담당
- 문화관광과 문화재담당 (☎ 055-960-4540)
- 최종수정일
- 2023.11.17 13:4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