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노사예 (盧士豫 ) : 미상
- 작성일
- 2016-07-15 13:44:44
- 작성자
- 관리자
- 조회수 :
- 516
효자인 선생의 호는 홍와(弘窩)이고 신고당 노우명의 손자로서 본관은 풍천이다.
13세가 되던해에 아버지를 잃게 되자 슬퍼함이 어른과 같았으며 어머니가 병중에 계실 때 하늘에 기도하기를 자기가 어머니의 병환을 대신할 것을 원하였고 어머니의 죽음에 이르러 3년간 죽으로 시묘살이를 하였다.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함은 물론 친우에 대한 신의도 두터워서 보는 이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게 하였다.
임진왜란시에는 의병활동의 창의에 가담하기도 하였으며 특히 학문에 두루 조예가 깊었으나 유교에 대한 학식은 특출하였고 그 효행이 본 받을 만하다고 하여 조정에서 정명을 내렸고 도곡서원에 제향되었다.
그의 정려는 노진, 노사상의 정려와 함께 지곡면 덕암리 교수정 앞에 있다.
13세가 되던해에 아버지를 잃게 되자 슬퍼함이 어른과 같았으며 어머니가 병중에 계실 때 하늘에 기도하기를 자기가 어머니의 병환을 대신할 것을 원하였고 어머니의 죽음에 이르러 3년간 죽으로 시묘살이를 하였다.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함은 물론 친우에 대한 신의도 두터워서 보는 이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게 하였다.
임진왜란시에는 의병활동의 창의에 가담하기도 하였으며 특히 학문에 두루 조예가 깊었으나 유교에 대한 학식은 특출하였고 그 효행이 본 받을 만하다고 하여 조정에서 정명을 내렸고 도곡서원에 제향되었다.
그의 정려는 노진, 노사상의 정려와 함께 지곡면 덕암리 교수정 앞에 있다.
- 담당
- 문화관광과 문화재담당 (☎ 055-960-4540)
- 최종수정일
- 2023.11.17 13:4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