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권석도 (權錫燾) : 미상
- 작성일
- 2016-07-15 13:39:32
- 작성자
- 관리자
- 조회수 :
- 540
한말의 의병장으로서 함양읍 백전면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고종황제를 폐위하고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하자 크게 분노하여 1907년 김동신 의병진에 참여하였다가 고광순 의병진에 합류하였고 1907년 10월 11일 고광순이 전사하자 남은 의병을 이끌고 계속 활동하다 동년 12월 21일 경남 하동군 화계면에서 박인환 의병진과 합류하고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이후 선생은 지리산을 거점으로 하동·함양·구례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과 대일 항쟁을 하던 중, 1908년 6월 26일 하동 일본수비대에 체포되어 하동주재소에 구금되었으나 7월 9일 탈주에 성공하여 도피하던 중 일경의 추격을 받아 가슴에 총상을 입었다.
1909년 3월 다시 이학로 의병장과 합류하여 진주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금하며 활동하던 중 1909년 10월 10일 일경에 체포되어 1909년 12월 5일 부산지방재판소 진주지부에서 종신형을 받고 대구공소원에 공소하였으나 기각되어 종신형으로 확정, 수감중 일본왕의 특사로 재감 6년 9개월만인 1916년 6월 24일 가출옥하였다.
그러나 그후 1918년 2월 일본 경찰로부터 다시 강도 누명을 쓰고 함양경찰서에 체포되어 10개월간 옥고를 치르다 1918년 12월 12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출옥하였다. 이 당시 선생은 허위자백을 강요당하는 등 혹독한 고문으로 반신불수가 되었다.
1960년에 재일본 거류민단(단장 박병헌)에서 백전면사무소 뒤편 동산공원에 장군을 기리는 흉상을 건립하였으며 1991년에 함양군에서 동상건립추진위원회를 조직하여 상림 숲에 동상을 건립하였다.
정부에서는 1986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이후 선생은 지리산을 거점으로 하동·함양·구례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과 대일 항쟁을 하던 중, 1908년 6월 26일 하동 일본수비대에 체포되어 하동주재소에 구금되었으나 7월 9일 탈주에 성공하여 도피하던 중 일경의 추격을 받아 가슴에 총상을 입었다.
1909년 3월 다시 이학로 의병장과 합류하여 진주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금하며 활동하던 중 1909년 10월 10일 일경에 체포되어 1909년 12월 5일 부산지방재판소 진주지부에서 종신형을 받고 대구공소원에 공소하였으나 기각되어 종신형으로 확정, 수감중 일본왕의 특사로 재감 6년 9개월만인 1916년 6월 24일 가출옥하였다.
그러나 그후 1918년 2월 일본 경찰로부터 다시 강도 누명을 쓰고 함양경찰서에 체포되어 10개월간 옥고를 치르다 1918년 12월 12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출옥하였다. 이 당시 선생은 허위자백을 강요당하는 등 혹독한 고문으로 반신불수가 되었다.
1960년에 재일본 거류민단(단장 박병헌)에서 백전면사무소 뒤편 동산공원에 장군을 기리는 흉상을 건립하였으며 1991년에 함양군에서 동상건립추진위원회를 조직하여 상림 숲에 동상을 건립하였다.
정부에서는 1986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담당
- 문화관광과 문화재담당 (☎ 055-960-4540)
- 최종수정일
- 2023.11.17 13:4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