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강희맹 (姜希孟) : 1424∼1482
- 작성일
- 2016-07-15 13:38:41
- 작성자
- 관리자
- 조회수 :
- 595
이름은 희맹이고 자(字)는 경순(景醇)이며 호는 사숙재(私淑齋), 국오(菊塢), 만송강(萬松岡), 운송거사(雲松居士)이며 시호는 문량공(文良公)으로 관향(貫鄕)은 진주(晋州)이다. 조선 세종조에 태어나 세조, 성종 때에 활동한 인물로서 독서를 많이하여세종 29년(1447년)에 과거에 장원급제하였고, 문장이 우아하고 정밀하며 시문(詩文)은 중국 선비들도 탄복했다. 공손, 근엄하고 슬기로워 공정한 인재 등용과 명백정대한 일처리로 깨끗한 생활을 하였다.
함양관아 객사를 건설할 때 그 상량문(함양문학 10호 19면)을 강희맹이 지었다.
1481년 춘추관지사, 의금부판사를 겸임하였다.
서거정이 그와 같이 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하여 올렸다.
그는 침착하고 예절이 바르기 때문에 사신의 선위사 혹은 접반사로 자주 나갔다.
향년 59세가 되던해 1483년 2월에 갑자기 병이 나서 세상을 떠났는데 이를 전해들은 주상이 매우 슬퍼하고 고기반찬을 들지 않았으며 관리를 파견하여 제사를 지내고 부의를 상례보다 더 후하게 하였다.
함양관아 객사를 건설할 때 그 상량문(함양문학 10호 19면)을 강희맹이 지었다.
1481년 춘추관지사, 의금부판사를 겸임하였다.
서거정이 그와 같이 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하여 올렸다.
그는 침착하고 예절이 바르기 때문에 사신의 선위사 혹은 접반사로 자주 나갔다.
향년 59세가 되던해 1483년 2월에 갑자기 병이 나서 세상을 떠났는데 이를 전해들은 주상이 매우 슬퍼하고 고기반찬을 들지 않았으며 관리를 파견하여 제사를 지내고 부의를 상례보다 더 후하게 하였다.
- 담당
- 문화관광과 문화재담당 (☎ 055-960-4540)
- 최종수정일
- 2023.11.17 13:4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