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강 한 (姜 漢) : 미상
- 작성일
- 2016-07-15 13:36:23
- 작성자
- 관리자
- 조회수 :
- 551
조선 초기의 서예가로서 학행이 뛰어나고 필법이 정교하여 당대의 명필로 유명하였다. 자는 종우(宗于)이며 호는 금재(琴齋)이고 본관은 진주이다.
선생의 아버지인 현감 강이경이 적개공신 남이 장군으로 인하여 화를 입었는데 이 때 어려서 강보에 싸인채로 어머니와 함께 이곳 함양으로 유배되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주가 출중하여 5~6세 때에도 이웃 아이들의 글 읽는 소리를 듣고 바로 그 글을 외우고 뜻을 해득하였으며 손으로 땅을 그려 글자 모양을 만들어 보는 등 자못 학문에 뜻을 두었다.
16세 되던때에 인근 사람이 상소문을 대필해 주기를 청하는 이가 있었으나 그는 죄인의 몸이라는 것을 들어 사양하다가 마지못해 써 준 일이 있었다.
성종이 그 상소문을 보시고 필법이 훌륭하여 글씨 쓴 이를 묻게되자 사실대로 아뢰었더니 곧 거마를 보내 올라 오기를 명하였다.
왕명이 내려지자 온 집안이 경황에 떨었고 어머니가 몹시 걱정하므로 그가 위로하기를
'죄를 주려면 의당 체포할 것이지 거마를 보낸 것을 보니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것으로 생각되는지라 이 번 길에 어쩌면 아버지의 누명을 벗을 수 있는 가망이 있을까 하옵니다' 라면서 위로하고 길을 떠났다.
편전에 올라가 임금을 배알하니 종이와 붓을 내려 주셨다. 선생은 눈물을 머금고 슬퍼하는 빛이 뚜렷햇으나 글씨가 매우 시원스러웠다. 임금께서 매우 칭찬하시고 눈물을 흘리는 까닭을 물으시매 부친에 관한 억울한 사항을 소상히 말씀드리니 특별히 사면하시고 그 원한을 씻어 주었다.
그 때에 중국 사신이 빈번했으나 사신을 맞이 할 사람이 마땅치 않아 조정에서는 그를 천거하는 이가 많았다. 이에 왕께서 성생의 정통한 학식과 단중한 예모를 아끼시며 백의로 접빈하는 직책을 맡기시니 조금도 예절에 어긋남이 없었다.
1496년(연산) 사마시에 급제하여 관리의 길에 올랐으며 현감으로 있을 때 모친상을 당하자 상례를 치룬뒤 어지러운 세상과는 인연을 끊고 산중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중종때에는 문신 김안국이 경상도를 시찰할 때 선생을 찾아와 벽에다가 글을 써놓기까지 할 정도로 인품과 학식이 뛰어났으며 1701년(숙종)에 수동면 구천서원에 배향되었다.
선생의 아버지인 현감 강이경이 적개공신 남이 장군으로 인하여 화를 입었는데 이 때 어려서 강보에 싸인채로 어머니와 함께 이곳 함양으로 유배되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주가 출중하여 5~6세 때에도 이웃 아이들의 글 읽는 소리를 듣고 바로 그 글을 외우고 뜻을 해득하였으며 손으로 땅을 그려 글자 모양을 만들어 보는 등 자못 학문에 뜻을 두었다.
16세 되던때에 인근 사람이 상소문을 대필해 주기를 청하는 이가 있었으나 그는 죄인의 몸이라는 것을 들어 사양하다가 마지못해 써 준 일이 있었다.
성종이 그 상소문을 보시고 필법이 훌륭하여 글씨 쓴 이를 묻게되자 사실대로 아뢰었더니 곧 거마를 보내 올라 오기를 명하였다.
왕명이 내려지자 온 집안이 경황에 떨었고 어머니가 몹시 걱정하므로 그가 위로하기를
'죄를 주려면 의당 체포할 것이지 거마를 보낸 것을 보니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것으로 생각되는지라 이 번 길에 어쩌면 아버지의 누명을 벗을 수 있는 가망이 있을까 하옵니다' 라면서 위로하고 길을 떠났다.
편전에 올라가 임금을 배알하니 종이와 붓을 내려 주셨다. 선생은 눈물을 머금고 슬퍼하는 빛이 뚜렷햇으나 글씨가 매우 시원스러웠다. 임금께서 매우 칭찬하시고 눈물을 흘리는 까닭을 물으시매 부친에 관한 억울한 사항을 소상히 말씀드리니 특별히 사면하시고 그 원한을 씻어 주었다.
그 때에 중국 사신이 빈번했으나 사신을 맞이 할 사람이 마땅치 않아 조정에서는 그를 천거하는 이가 많았다. 이에 왕께서 성생의 정통한 학식과 단중한 예모를 아끼시며 백의로 접빈하는 직책을 맡기시니 조금도 예절에 어긋남이 없었다.
1496년(연산) 사마시에 급제하여 관리의 길에 올랐으며 현감으로 있을 때 모친상을 당하자 상례를 치룬뒤 어지러운 세상과는 인연을 끊고 산중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중종때에는 문신 김안국이 경상도를 시찰할 때 선생을 찾아와 벽에다가 글을 써놓기까지 할 정도로 인품과 학식이 뛰어났으며 1701년(숙종)에 수동면 구천서원에 배향되었다.
- 담당
- 문화관광과 문화재담당 (☎ 055-960-4540)
- 최종수정일
- 2023.11.17 13:4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