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게시물 검색 제목 검색 총 48건의 게시물이 있습니다. (2/5 페이지) 이후백 (李後白) : 1520~1578 선생의 자는 계진(季眞), 호는 청련(靑蓮)이며 본관은 연안이고 1520년(중종15) 이국형의 아들로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에서 태어났다. 9살 때 부모를 여의고 백부의 손에서 자랐으며 16세때 향시에 수석으로 합격한 후 외가인 전남 강진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27세때인 명종 초기 진사에 합격한 후 1555년(명종10)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 부정자직을 맡아보다가 승정원 주서겸 춘추관 기사관을 지냈고 이후 시강원설서, 사... 2016-07-15 관리자 조회수 : 823 이지활 (李知活) : 1434~ ? 조선 초기의 충신인 공의 자는 망기(忘紀), 호는 고은(孤隱)이며 문정(文靖)이라는 시호가 내렸고 본관은 성주이다 1434년(세종16) 성주군 장지촌에서 이조판서를 지낸 이비 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외가 부근인 이 곳 함양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어려서부터 남다른 총명과 재질로 학문을 배워 14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됨으로써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문종1년 천거에 의하여 18세의 나이로 지금의 남원시 ... 2016-07-15 관리자 조회수 : 774 이지번 (李之蕃) : 1469 ~ 1522 조선 중기의 학자인 선생의 호는 송계(松溪), 자는 성중(盛仲)으로 본관은 성주이고 이지활의 손자이며 현감을 지낸 이문현의 아들로서 병곡면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학문을 배우는데 스승의 가르침을 받지않고 스스로 학문의 논리를 터득하여 경지에 이른 사람으로 당대의 명사들인 표연말, 유호인, 최한후등과 교류하였다 1492년 천거되어 시독관과 사간을 지낸바 있으며 무장(지금의 고창지역)현감으로 부임하여 선정을... 2016-07-15 관리자 조회수 : 641 이병헌 (李炳憲) : 1870~1940 호는 진암(眞庵)이며 민족수난기에 병곡면에서 태어난 대학자요 유교 개혁 운동가로 학자들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제가 몰수한 전국의 향교재산을 환원케 했으며, 동서양의 사상과 문화를 복원된 유교에 포용해서 시운과 민족의 여망에 부응하는 참신한 유교 교리로 체계화하고 중국의 실천적 개혁사상인 변법자강... 2016-07-15 관리자 조회수 : 738 유호인 (兪好仁) : 1445~1494 조선 초기의 문장가이며 정치가인 선생은 수동면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뇌계, 자는 극기이며 유음 의 아들로 본관은 기계이다. 선생은 학문에 능통하여 부모에게는 지극한 효도를 다했고 위로는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여 충효의 표본으로 삼는 인물이며 위대한 학문의 힘으로 조선조의 손꼽히는 문장가중의 한사람이다. ... 2016-07-15 관리자 조회수 : 874 유 강 (柳강) : 미상 충효일본(忠孝一本)이라더니, 효자 유강은 나라에 목숨을 바친 충과 어버이에는 죽음을 다한 효로서, 이 말의 표본이라 할수 있다. 1597년의 정유 재란 때에 어버이를 모시고 성 안에 들어갔다. 성이 함락되므로 먼저 어머니를 업고 나와 안전한 곳에 모셨다. 이윽고 적 가운데 들어가 아버지를 업고 나오려는데 적이 아버지를 해치려고 하므로 몸으로 가렸으나 함께 해를 입고 말았다. 나라에서 정명을 내렸다. 2016-07-15 관리자 조회수 : 546 우정규 (禹楨圭) : 1718~? 조선 정조때의 문신으로 자는 여보(汝寶), 호는 남파(南坡)이며 본관은 단양으로 남재 우희길의 현손이며 우서주의 아들로 함양에서 태어났다 생원이 되었던 그는 1765년(영조41)에 친시책(親試策)에서 수위라는 좋은 점수를 받아 왕으로부터 '정시(庭試)에 나오라'는 특명을 받았다. 1766년(영조42)에 그는 정시 문과에 나가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이 되었다. 그러나 본래 출신이 한미하여 '삭직하라'는 간관의 논핵... 2016-07-15 관리자 조회수 : 552 여자신 (呂自新) : 미상 조선 초기의 무신으로 시호는 정장공(貞莊公)이며 본관은 함양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1479년(성종10년)에 병조참판이 되었으며 이어 경기도. 강원도의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499년 지중추부사가 되어 성절사로 명나라를 다녀왔으며 이듬해 평안도 병마절도사를 거쳐 연산군때 도총관이 되었다. 전라도와 함경도의 관찰사와 이조참판을 거쳐 중종때 병조판서에 이르렀다 아들 여윤철과 함께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다. 2016-07-15 관리자 조회수 : 556 여윤철 (呂允哲) : 미상 조선 중기의 무관으로 여러 내외직을 거쳐 평안도 병마절도사로 있으면서북쪽 변방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국가를 수호하였으며 모든 정사를 청렴결백하게 처리하여 고을 백성들이 청백비를 세웠다 전라 좌수사가 되어서는 해상방어에 직접 지휘를 하며 밀려오는 왜구를 막았으나 피로에 지쳐 적탄에 맞게되자 왕이 소식을 듣고 의원과 약을 하사하셨으나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워낙 청빈하여 장례를 치를 식량이 없어 애를... 2016-07-15 관리자 조회수 : 695 양홍주 (梁弘澍) : 1550~1610 조선조의 학자로서 자는 대림(大霖), 호는 서계(西溪)이며, 본관은 남원으로 춘추관 편수관을 지내면서 명종 실록 편찬에 참여했던 양희의 아들이다. 학문이 높고 품행이 방정하였으며, 성리학을 연구하여 독특한 학문을 이룩한 남명 조식 선생과 당시 성리학의 대가인 이이, 성혼 등의 문인으로 들어갔으며, 임진왜란때에는 아들 황의 건의로 가재를 팔아 화살을 구입하여 배에 싣고 의주의 행재소로 들어가 왕에게 바침으로... 2016-07-15 민혜경 조회수 : 628 « ‹ 1 2 3 4 5 › » 담당 문화관광과 문화재담당 (☎ 055-960-4540) 최종수정일 2023.11.17 13:41:59 만족도 조사 현재 열람하신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십니까? 평가 매우 만족함(5점) 만족(4점) 보통(3점) 불만족(2점) 매우 불만족(1점) 의견 등록하기